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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Mar 26. 2023

일기는 아닌데

이걸 뭐라고 하지

조명이 켜진다. 교장 선생과 여경만이 존재하는 무대. 둘을 비추는 조명은 어두운 분위기를 연상한다. 교장 선생은 의자에 앉은 채 있으며 여경은 일어서 있다.     


교장: 김여경 선생, 편지를 받으셨다고요?


여경: 네, 그전에 교장 선생님. 학교 폭력 가해자는 총 네 명입니다. 주동 가해자로 뽑히는 나선환과 그의 무리인 신준혁과 쌍둥이 형제인 정이와 정안. (사진을 내밀며) 이것을 봐주십시오.


교장: 김재혁 학생의 몸입니까?


여경: 네. 맞습니다. 보는 바와 같이 몸 곳곳이 멍이며 손목에 자해 자국까지 분명하게 확인 가능한 게 보이실 겁니다.


교장: (한숨을 쉬며) 자해는 증거가 되질 않습니다. 


여경: 가해자로부터 받은 외상적 스트레스⋯⋯


교장: (헛기침한 후) 편지를 제게 주시지요.


여경: 네? 아니⋯⋯


교장: 김여경 선생, 소유정 선생이 출산 휴가 낼 예정입니다. 내년에도 학교엔 공석이 생긴다는 겁니다. 사회 과목 티오는 찾기 힘든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자사고의 존폐가 논의되는 상황 속에 저희 학교가 구설수에 올라봤자 좋을 것 하나 없습니다.     


교장 선생은 말 끝나기가 무섭게 서류 봉투를 하나 내민다. 여경은 서류 봉투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교장: 싸인 하시죠.


여경: 무슨 뜻이십니까.


교장: 별 뜻이 있겠습니까. 그저, 우리 학교를 위해서 일해주셨으면 한다는 교장으로서의 작은 바람이 담긴 겁니다.


여경: 교장 선생님⋯⋯.


교장: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여경: 하지만⋯⋯.


교장: 정규직이 싫으신 겁니까?


여경: ⋯⋯.


교장: 편지를 주시죠.     


교장 선생은 탁자 위에 놓인 사진을 찢는다. 무거운 분위기 속 낮은 목소리가 교장실을 낮게 떠돈다. 김여경은 주먹을 꽉 쥔다.     


여경: 재혁이가 제게 준 것입니다.


교장: (웃으며) 참 선생도 좋지만 김여경 선생, 올해 나이가 서른둘이지요. 이제 정착하고 노후까지 편안하게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경: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 이건 재혁이가 제게 준 편지이자 분명한 도움의 요청입니다. 분명 편지 안엔 가해자의 이름이 적혀 있고 제게 도움을 청했는데, 선생으로서 학교 폭력 사태에 대해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교장: 무시라니요? 제가 언제 무시하라고 했습니까. 저는 무시하라고 한 적 없습니다. 재혁 학생을 도와주세요. 선생으로서 역할을 하시는 겁니다. 나쁜 길로 안 빠지고 나쁜 생각 안 가지게요. 친구를 신고하는 나쁜 학생이 안 되도록요.


여경: 묵인하라는 말씀이시잖아요!


교장: 허허, 김여경 선생. 김영란법에 따라 학생에게 어떠한 금품도 물품도 선생은 받을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 교장이 압수할 권리를 갖고 있다, 저희 교칙에도 명시되어 있는 사항입니다. 주시지요.


여경: 아니요, 교장 선생님. 삼만 원 이하의 물품일뿐더러 그 어떤 부정 청탁과 관련이 없는 순수한 목적의 편지입니다. 이것을 교장 선생님께서 가져가신다는 것이야말로 갈취에 불과한 행위입니다.


교장: 방금 하신 말씀 후회 없으십니까?


여경: 아직까진 없습니다. 곧 생길 것도 같지만, 그건 그때 생각해보겠습니다.


교장: ⋯⋯일단 알겠습니다. (봉투를 여경 쪽으로 밀며) 그렇지만 이건 직접 갖고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여경: (침을 삼키며) 아닙니다. 이미 미운털이 박혔을 텐데 정규직으로 전환돼도 문제 아니겠습니까.


교장: 김여경 선생, 보기보다 까탈스러우신 면이 있군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미 어머님도 아시는 사실인데 그래도 서류는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미운털은 고운 털로도 충분히 가려지는 법입니다.


여경: (찡그리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교장: 저는 짐승이 아닙니다.


여경: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습니다.


교장: 저는 사람 말만을 했습니다. 충분히 알아들었을 텐데요.


여경: 교장 선생님, 이게 무슨 경우입니까?


교장: 왜 그러십니까, 좋은 소식 어머니한테 먼저 알려준 게 뭐가 잘못된 거라고요. 제가 교장이기 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자 부모로서 또 선배로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김여경 선생 어머니께서 식당을 운영한다기에 점심 식사도 할 겸 교감 선생과 함께 방문차 갔다 왔습니다. 따님 정규직 전환 얘기를 듣자 어머님께서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요즘 장사가 안돼서 많이 힘들었다고 하답니다.


여경: 바라는 게 무엇입니까.


교장: 말하지 않았습니까. 학교를 위하길 바랄 뿐이죠. 아, 어머님 음식 솜씨 훌륭하시더군요.


여경: 제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교장: (웃으며) 아까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재혁 학생을 도우세요. 선생으로서 역할도 하시고요. 재혁 학생이 친구를 신고하는 나쁜 학생이 안 되게요.     


교장 선생 퇴장. 조명은 밝아진다. 무대에 등장하는 숙희와 재혁, 준혁은 여경 앞으로 다가온다. 여경은 뒤를 돌아 학생들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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