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다.
부부 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 총 6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또한 부부 상담 2회 차부터 그와는 별개로 6회에 걸쳐 나와 상담 선생님과의 개별 상담도 시작되었다.
개별 상담 기간 동안 부부 상담 1회 차에 간단히 말씀드렸던 지난 내 삶의 상처들을 고스란히 털어놓았고, 모든 것은 기록이 되었다. 그러나 처음 개별 상담을 하는 시작부터 나는 이 상담 기록마저도 앞으로의 이혼 절차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만일에 일어날 이혼 소송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모든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는 가장 친한 중학교 친구 중 한 명의 오빠가 최근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친구에게서 오빠의 명함을 받은 뒤, 지난 15년 간의 결혼 생활에 대한 나의 기록과 증거들을 빠짐없이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가 과거에 물리적 폭력을 가하고 내게 썼던 두 장의 각서, 그가 폭언을 가할 때마다 공포에 떨면서 내가 썼던 블로그와 일기의 내용들, 지난 2년 간 카톡에서 싸우고 내가 제발 무섭게 폭언하지 말아 달라며 애원했던 300여 장의 캡처 본, 그리고 지난 6년 간 2군데의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얻어 낸 진단서와 의무기록지를 떼어 준비했다.
지난 6년여간의 병원 의무 기록지를 다시 읽어보았을 때 그 안에 담긴 세 사람의 이름들, 나를 극도의 공포와 우울에 빠져들게 한 두 명의 상사와 남편의 이름이 거기에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이제는 은퇴한 일본인 임원을 코로나가 끝나기만 하면 일본에 찾아가 칼로 쑤셔버리고 싶다는 무시무시한 증오심이 들었다. 또한 다른 부서에 발령받은 부장은 5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당장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소해 버리고 싶었다. (그 당시 H사 자동차 디자이너가 직장 괴롭힘으로 자살한 사건이 화두였다. 나는 그 기사를 볼 때마다 심장이 조여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그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고 싶었다. 멱살을 쥐어 잡으며 내 커리어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버린 거냐고 울부짖고 싶었다.
그리고 현재 내 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남편… 그는 혼자되어야 마땅했다.
나는 그와 똑같은 연봉을 받고 있고 재산 분할을 이미 마친 상태이며 자립할 능력 또한 충분하다. 내 아들의 양육권은 내가 가져오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또한 상담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선생님이 당연히 내 편이 되어 나를 위한 상담 자료를 이혼 소송에 유리한 방향으로 내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렇지만 이후의 상담의 내용은 생각과는 달랐다.
“네, 부인님. 저는 남편에게 지난 상담 시간에 비폭력 대화를 부인님께 계속 시도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땠을까요?
상담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글쎄요. 그전에 상담 및 MBTI 검사를 그렇게 하자해도 안 하더니 이번에 하고 나니 제가 예상했던 MBTI가 그대로 맞았더라고요. 자료와 수치로 입증이 되니 그제야 자신과 저의 성향을 인지하고 받아들인 것이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일까요?
하지만 역시... 사람은 못 고쳐 쓴다고 처음에 몇 번 비폭력대화를 하는데도 제가 받아주지 않으니 짜증을 내며 드러누워 버리더군요. 자신은 욱하는 걸 절대 못 버리며 그것을 버리면 자신의 자아를 상실하는 것이라나요? 저는 그런 자아를 지켜야 한다는 일 자체가 이해가 안 갑니다. 1회 상담으로 사람이 고쳐지겠냐마는, 저는 또 한 번 망연자실했을 뿐입니다. 깨달은 게 있다면 ‘아. 이 남자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지질하고 열등한 사람이구나. 정말 나와 비교 불가한 사람이다. 오히려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이 겪지 못한 것을 이겨 냈기에 제가 참 강하다’라고 생각했고 제 자신의 이혼 결심에 대한 더한 확신이 들었어요.
또한 MBTI 검사에서 나왔 듯 남편의 성향 자체가 저와 맞지 않고, 이제는 인간적으로도 제게는 매력 없는 사람이에요. ISTJ인 남편은 INFJ인 저와 완전 상극인 데다 공감이 1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언어로 말하기 위해 객관화된 서류로 보여주는 게 이해가 빠를 것 같아 지난 정신과에서 받은 의무기록지의 내용을 보탰는데 답이 없었어요. 그 사람 말로는 그때 제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고 하는데, 과연 공감 능력이 이러한 교육과 상담으로 생기는 것일까 의문이 듭니다.
“네, 남편님의 그런 성향이 한 번에 고쳐질 수 있는 부분은 아닐 거예요. 그러나 남편님 같은 분은 상담자인 저와 ‘라포 형성'(의사소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신뢰관계) 이 되면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이에요. 남편 분은 부인님이 인정하셨 듯 좋은 부모님 밑에서 안정적인 지지를 받으며 자존감이 높게 자랐고, 스스로 배우려는 의지와 노력해서 성취하려는 열망이 강합니다. 지난 부부 상담 때 말씀드린 것처럼 아내분이 15년을 참아온 만큼 남편께서 이제는 부인님을 받아줘야 할 시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내분은 그동안 배출하지 못한 감정들을 이제 충분히 뱉어 내셔도 될 것이고, 남편분은 조금 더 받아 줄 필요가 있어요. 저는 그게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두 분 사이는 ‘NOT BAD’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선 알고 싶은 것은, 부인님이 심리 검사에서 적어냈던 대로,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직전 1년이라고 했는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나요? 그러니까, 작년 말 남편과의 싸움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까지는 어땠을까요?”
나는 나의 지난 1년을 곱씹어 보며 대답했다.
“네, 저는 우울증으로 쓰러진 뒤, 그 해 중순에 힘들게 정신과 약을 끊었어요. 글쓰기를 통한 트라우마의 대면과 운동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고, 부지런히 뒷산을 오르며 내가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었습니다. 비로소 내 삶에 내가 주인임을 느꼈고 내 삶에 충만함을 느꼈어요.
그런데 실은, 제가 지난 1년간 운동과 마음공부를 통해 한 단계 성숙해지고 단단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완전한 회복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그러한 저의 불안을 간파하셔서 개별 상담을 제안하신 거겠죠.”
나는 마음공부와 운동을 시작한 뒤, 딱 1년이 된 후부터 다시 무료함과 답답함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넘쳐나는 체력과 루틴 하고 무료한 일상을 견딜 수 없었다. 미친 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매일의 일상이 파티였고 이벤트였다.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자지 않았지만 피곤한 줄을 몰랐다. 작년 말이 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방에서 화장실에 가는 도중 약 2~3초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2020년 초 우울증으로 정신을 잃은 다음 두 번째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 이상을 느끼고 나 자신의 상태를 기록하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정신이 없고, 이것저것 다 하는 데 어느 것 하나도 집중을 못한다.
자꾸만 잊어버려서 시간대 별로 해야 할 일을 적고 알람을 맞춘다. 특히 일에 집중이 전혀 안되고 문자가 다 흩어져서 책이나 서류를 한 장 반 이상 읽지 못한다. 술을 많이 마시면 특히 심해진다.
온몸에 멍이 들고 부종이 심해졌다. 잠이 오지 않고 불안증이 도졌다. 지금 상태가 너무 행복한데 이 행복이 언젠가는 끝날 것 같다는 불안에 초조하다.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가 않고 아프지가 않은데 마사지 샵에 갔더니 내 몸상태가 아주 심각하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 아닌 것 같고 나와 현실은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생각하는 게 다 이뤄질 것 같다. 예를 들면 오늘 로또를 사면 무조건 당첨될 것 같고, 아이가 시험을 잘 보면 서울대를 갈 것만 같다. 그런데 이 또한 언젠가 끝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강박이 심해져서 모든 내 일상에 소소한 동선까지 다 계획한다.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짜증이 나고 맞으면 인생이 완벽해진 느낌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져서 모든 일을 다 벌려놓고 다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정작 완성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데 그 어느 것도 해내지 못해서 지친다.’
나는 그때 스스로 내가 극도의 조증 상태임을 인지하였다. 하반기에만 카드값을 천만 원을 써댔고 나의 장롱은 터질 듯 넘쳐났다. 마지막 정신과에서 진단받았던 ‘경도의 양극성 장애’, 그때는 그 의사를 돌팔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단어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그 해 연말부터 연속적으로 남편에게 폭언을 들었다. 불안과 우울의 나락으로 급강하했고 연초부터 열흘 간 하루도 빼지 않고 만취 상태로 지냈다. 지난 15년 간 그의 변화를 수없이 요구하며 지쳐버렸고, 그동안 얇아진 끈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끊어져 버렸다.
그때부터 나의 기억은 파편처럼 흩어지고 집중력 저하 및 난독증이 심해져 책을 한 장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급기야 진행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 읽기를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회사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결혼식장에서 5분 거리의 지하철역을 찾지 못해 혹한의 추위에 3바퀴를 빙빙 돌아야만 했다. 결국 길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하지만 남편에게 말하면 알코올 중독이라며 내 탓만 할 게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담을 하면서 매일매일 그에게 15년간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써온 일기들을 한 장 한 장 전송했다. 남편에게 전부 다 쏟아붓기로 결심했지만 욕하거나 소리치는 일은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 지치는 일이었기에, 나는 그에게 일기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내게도 얼마 간의 기간 동안 다 토해 낼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울었다. 내 의무기록지에 적힌 세 명의 가해자들을 원망하고 증오했다. 내 뇌와 자아가 다 부서지고 해체된 것 같았다. 밖에서 명랑하고 웃는 나와 매일 울고 우울 해 하는 나. 그중 진짜 내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친구와 이런 고민을 말하던 중에 내가 몇 년 전 친구에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며 막살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의 정체성이 조각조각 해체됐다. 내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