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건 단지 따뜻함.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
마지막 상담에서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그래요. 제가 부인님을 보면서 든 생각은, 파도치는 바다 위에 있는 배와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넘실대는 파도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육지로 내려온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멀미가.. 나겠죠.”
“맞아요. 부인님의 지난 삶을 들어보면, 그 나이에 비해서 상당히 굴곡진 인생을 살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찌 보면 그런 삶 속에서 부인님이 가지게 되는 조울 양가의 감정과 불안, 그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항상 불안함 속에 사니까… 어때요. 자신의 삶이 안정적이면 살아있음을 느낄 수가 없는 거예요.
처음 상담 때 얘기한 대로,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가 직전 1년이라고 했었죠. 그때 부인님은 자기 마음공부를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며 보냈어요. 그런데 그런 행복을 견딜 수가 없고 다시 불안 속으로, 자신을 자꾸 밀어낸 단 말이에요. 그래야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자꾸 해요.
또한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렇죠.
‘아버지는 내게 사랑을 주었지만, 타인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 수 있다. 어머니는 피해자였지만 내게는 감정적으로 잘 대하지 못했다. 언니라는 유일한 방어기제는 미국으로 나를 버리고 떠나갔기에 사랑과 원망이 있다.’
사람을 평가할 때 나의 경험이 우선이 되다 보니 사람들을 객관화시킬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배려심이 많고 온화한 성격의 부인님은 자기 편인 사람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지만, 나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 사람은 완전히 배척하게 되지요. 이것은 어찌 보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부인님의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에요.
자, 그렇다면 다시 남편과의 사이로 돌아가서,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부인님은 남편분을 어떻게 생각했지요?”
“저는 그때 남편을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남자 어른’이라고 늘 얘기했었어요. 그의 친구들은 모두 그의 말을 따랐고 그에게 모든 일에 조언을 구했어요. 저는 그를 항상 ‘김 네이버’라고 불렀어요. 모든 것을 알았고, 항상 저를 도와줬고 저 또한 그를 존경하고 의지하고 사랑했어요."
“그런데도 그는 결혼해서 만취 상태에서 두 번의 실수를 했죠. 그럼에도 부인님 남편분을 그렇게 사랑을 했어요. 왜, 왜 그렇게 사랑했을까요?”
“… 글..쎄요… 그냥 저는 모든 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요. 관계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사실 갈 데가 없기도 했어요. 집을 뛰쳐나와 도망쳤지만 친정에 가봐야 남편하고 다시 잘 살라고 할 게 뻔했거든요. 그래서 시댁으로 갔고, 시어른들께서는 남편을 무릎 꿇리고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아들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시어머님은 제게 오히려 무릎까지 꿇으며 비셨어요.”
“정말 좋으신 시부모님이네요. 부인님 본인도 남편도 시부모님에 대해 그렇게 얘기를 하셨지요?
부인님은 그에 반해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양가의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더구나 부인님은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데다 이번 상담 시 검사 결과 신경증과 불안증, 알코올 중독 증상이 상당히 고위험 상태로 나오고 있어요.
부인님 같은 분에게 사고적이고 이성적인 데다 욱하는 남편은 부인님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었을 거예요.
남편님과 상담 시 제가 목소리를 들어보니 남편님 성량이 굉장히 커요. (선생님은 처음에 남편이 성악을 배운 적이 있냐고 물었었다.) 그렇게 크고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에 단도직입적인 성향의 남편이 소리를 치면 폭력에 약한 부인님은 다른 사람들보다 굉장히 큰 공포를 느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부인님, 제가 보기에 부인님은 파도 속에서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자꾸 본인을 그 파도치는 곳으로 자꾸 밀어내려고 한 단 말이에요. 불안이 없으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죠. 그러니까 남편분과 싸울 때에도 자해를 한다던지, 울며 소리치고 약을 먹는 등의 방법으로 대응을 해왔던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저는 결혼 또한 집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기에 굉장히 서둘렀어요. 그런데 막상 결혼 준비를 하는 도중 굉장히 허무하더라고요. 그때는 이제 모든 여한이 없고 죽고 싶단 생각이 든다고 친구들에게 늘 말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결혼 후에도 항상 혼자서만 잘 노는 그를 바라보면서 극도의 외로움에 몸서리를 쳤고, 술을 많이 마신 어느 날은 잠든 남편의 뒷모습을 보다가 너무 서글퍼져서 장롱에 목을 맨 적도 있어요. 남편과 싸울 때 그가 저에게 소리치면 칼로 남편이 아닌 제 몸을 그어버리는 상상도 수없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왜 본인이 그렇게 까지 끝장을 보려고 했던 것일까요?”
“음…네… 저는 살아오면서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 밖에 보고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남편분이 부인님에게 결코 잘했다고 볼 수는 없어요. 남편분과 상담해 보니 이러한 부인님의 과거를 전혀 몰랐었다고 하시던데, 아마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더 조심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부인님 또한 그런 트라우마가 없었다면 남편분과의 싸움 방식이 좀 더 달랐을 것이고, 남편분의 공격에 스스로를 방어하고 지켜냈을 거예요. 그렇지만 어찌 보면, 그동안 이렇게 불안해하던 부인님에게, 남편분은 일종의 보호자가 아니었을까요? 매 순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부인님을 보면서, 남편분도 어느 때는 지치고 힘든 상황이 오고, 그래서 짜증이 나서 화를 내거나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는 속으로 그 사람이 그래도 나쁜 놈이라고 정당화하려 애쓴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솟구치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네, 그러나 이제는, 부인님은 더 이상 남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의 얘기도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세요.
이제까지 부인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부인님의 삶에는 단 한 가지만이 절실했던 것 같아요.
그것은 바로 ‘따뜻함’.. 그 한 가지만 필요했을 뿐입니다.”
이 한 마디에 나의 심장박동과 모든 공간과 시간의 흐름이 멈췄다. 타임슬립이 된 채 과거의 나 자신을 소환해 내었다. 내가 오로지 원했던 그 한 가지, 그렇게 남편에게 수없이 요구했던 그 하나, 바로 ‘따뜻함’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안정적이고 따뜻한 부모님의 지지 속에 단단하게 살아온 K. 내가 그의 집에 처음 갔을 때 나는 K보다 그의 온화하며 한결같이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에 더욱 마음이 끌렸더랬지…
그런 그가 나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더욱 행복하고 무던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내가 그의 삶을 망친 것은 아닐까? 나는 이 모든 것이 다시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TV를 보며 빨래를 개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 TV 또한 그는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마음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고 상담 기간 동안 불만을 털어놓자, 그가 이제 같이 보자며 본인의 용돈을 털어 사 준 것이었다.)
“오빠.. 저기… 내가 오늘 상담을 하면서 말이야. 오빠가 나 같이 불안한 여자를 안 만났으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나 이런 생각을 했어. 그래서 참 미안해.”
남편은 내게 말했다.
“배운아, 나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살아오면서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어떠한 후회도 원망도 해 본 적이 없어. 배운 이 가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그러니까 배운 이도 자신을 자책하는 말을 하지 마.
그리고 배운이야말로 이런 보잘것없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상처받을 필요가 있을까? (웃음)
오히려 자기 자신을 믿고, 오빠가 가끔 말실수를 하고 짜증을 낸다 해도 ‘에휴 저 모자란 인간…’ 이러고 무시해 버리면 되잖아?”
그의 말을 듣고 나자 다시 내 안의 우주가 통째로 쿵 하고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과 잊혔던 감정이 다시 내 안에서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세 가지 말로 세상 모든 행복을 다 담을 수 있을 것인데... 우리에게는 이 것이 왜 이리 힘들었을까.. 다른 곳에서 듣는 이 따스한 말들이 나를 서게 하고 걷고 살게 만드는 데,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해 줄 수 없었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에서 저릿함이 일었다.
상담을 하는 기간에 내 오랜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며 내 흐트러진 자아에 대해 물었다.
“나란 사람은 대체 어릴 때 어떤 사람이었지? 우울한 사람? 밝은 사람? 웃기는 애? 슬픈 애?: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너? 너는 그냥 보통 사람. 보통 사람이었지.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우는 사람. 그게 바로 너일 뿐이야.”
순간 나의 확장된 동공이 잔잔한 내 마음의 바닷속에서 너울거렸다.
이해받을 수 있다는 위로는 지친 내 영혼을 마음속의 육지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조심스레 그 땅에 발을 디뎌보았다. 더 이상 멀미가 나지 않았다.
나는 약을 먹어야만 잠이 들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의 회복 탄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만 했다. 살아야 하기에 이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나의 최종적인 승리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며 이 글을 멋지게 마무리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국은 다시 나 자신과의 대면이다.
그에게서 그가 아닌 다른 무엇에게 서도 나 자신을 해치지 않고 지켜내는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해야 할 몫이었다.
또한 나아간다면 이 아픔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이 지구라는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보편적인 여성들이 갖는 아픔이며 내 개인의 것으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폭력 가운데 맞고 싸우고 쓰러지고 있는가?
소비와 힐링과 음주와 여행 등으로 나 자신을 잠시 다독일 수는 있겠지만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의 연대, 공동체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나는 이혼을 준비하며 지인에게서 추천받은 책 ‘미쳐 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저자 하미나)을 읽었다. 난독증으로 흩어지는 문자들을 한 자 한 자 잡아가며 겨우 읽어냈고 공감을 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프고 슬프기도 했지만 책의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구원의 대상이 아닌, 구원의 주체가 될 때만이 사랑은 구원이 된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뿐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 동물일 수도 있고, 글쓰기와 같은 행위일 수도 있다.’ – [미괴오똑녀 중]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삶을 위해 같이 살아내야 한다.
우리는 사회 속 연대를 통해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깊이 공감했지만, 슬프게도 자기 자신에게만은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내가 스스로 돌보는 것이다. 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타인과의 연대는 어쩔 때는 또 다른 고통을 낳기도 하며 타인의 공감을 통한 고통이 더해지는 것 또한 수반될 수 있기에, 결국엔 나를 믿고, 내 자신의 거울을 믿고 자아를 투영하며 단단해져야 한다.
내게 상담 선생님이 주신 숙제는 이것이다.
‘모든 일에 조급해 하지 말 것, 긍정의 언어로 이야기 할 것,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믿을 것.’
나는 상담선생님이 말했듯 내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이잖아?’
직장도 있고 집도 있고, 목숨보다 귀히 여기는 아들도 있다. 우울한 부정어를 계속 사용하면 다시 나를 공격하고 주변 가족을 힘들게 하겠지.
이제 나의 인생은 내가 행복의 언어로 다시 쓴다.
나는 내 인생의 봄날이 오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봄을 찾아 떠날 것이고 따스한 봄날 볕 밑에서 내면의 꽃을 가꿀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춥지도, 외롭지도 않게. 나는 나를 안아 줄 것이다.
내가 봄을 찾으니까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꽃이 되었다.
지금 나는 꽃밭에 앉아 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