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마음이 남아서 그렇지.

어느 날의 그깟 장보기

by 배운

슬픈 시절은 다 지났다고 생각했는데도, 난 왜 여전히 슬프고 잘 울까?

제대로 숨을 쉬기에는 아직고 내 속에 상처가 너무 많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남을 위해.


나는 오늘 아들을 위해 따뜻한 식사를 차리고, 친정 부모님을 위해 정육점과 배달 주문 어플을 찾아 뒤적거리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 시어머님을 대신해 강아지를 산책시켰다,


남편과 아들을 위해 저녁을 차리느라 나는 항상 저녁 식탁에 제일 늦게 앉고 제일 빨리 일어나고, 밥은 때로 서서 먹거나 아들의 남은 밥을 먹기도 하면서도, 나는 그저 좋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 먹는 모습이 그저 좋아서.


오늘은 원래 병원에 항암 치료로 입원해 계신 시어머님의 퇴원 날을 피해 친정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어머님이 옆 자리 환자분이 코를 심하게 골아 도저히 잠을 주무실 수 없다 하여 갑자기 오늘 퇴원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오늘 아침이 되어 서야 내게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도 나와 함께 친정에 가지 못했다. 평생을 희생해 온 김 씨 집안의 기둥인 지혜와 인내와 온갖 전통적인 고생의 상징. 우리 어머님을 모시러 갔다.


나는 부모님의 생신 선물과 각종 살림 필수품들을 바리바리 싸 든 채 버스를 타고 아들과 둘이 친정에 갔다. 날은 더웠고 나는 이틀 전 건강검진에서 다발성 자궁 용종과 난소 낭종의 비대증으로 대학병원에 검진 예약을 해 둔 상태였다. 걸음걸음에 뻐근함을 느꼈다.


부모님과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면서, 늘 완벽주의에 빠릿빠릿하던 내 엄마의 행동이 둔해진 걸 알아차렸다.

나는 말했다.


"엄마도 늙으셨네 행동이 꿈 떠지신 걸 보니."


그러자 엄마는 내 아들 앞에서 내게 말하길.


"지랄하고 자빠졌네."


항상 우아하고 세련된 말투를 구사하며 우리 아들에게 훈계하는 엄마가 내로남불 격으로 내 아들 앞에서 내게 욕을 하다니. 식탁의 모두가 빵 터졌다.


나 또한 웃으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만 나 학교 다닐 때도 나만 구박했잖아. 맨날 쥐어박고 등짝 때리고 욕하고. 왜 나한테만 그랬어?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었어?”


그러자 엄마는 내게 말했다.


"그럼 너라도 받아줘야지. 나도 풀 데가 있어야지!"


칠순이 넘은 엄마의 너무나도 당당한 답변에 그저 웃었더랬다.


집에 와서 쏟아지는 피곤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 갑작스레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니 심장이 조여 오게 아프다. 그러나 나는 또 이내 저녁 밥상을 분주하게 차린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이것 뚜껑을 닫아라 저걸 치워라. 분주하게 지시를 하고. 나는 안 그래도 하고 있는 바쁜 내게 지시하는 그가 못마땅하다.


밤이 되었다. 나는 아파서 아무것도 안 하고픈 방전 상태인 며칠을 채우기 위해 좋아하는 밀린 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들을 불렀다. 늘 그렇듯 자기 전에 내 침대에 같이 누워 아들과 책 보는 게 나의 낙이다.

그런데 남편이 퇴원하신 어머님 드실 게 없다고 어플로 장을 보라고 한다. 내가 알아서 잘 볼 테니 그런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다. 알겠다고 하고 아들을 부르는데 남편이 아들을 불러 세우고 내 방문 앞을 막는다.


“장을 봐야 하잖아.”


내가 장을 볼 때 아들이 옆에서 책을 읽으면 안 되나?

별 것 아닌 일에 울화가 치민다. 20여분에 걸쳐 장을 본다. 좋아하는 책의 한 챕터를 다 읽으려던 나의 계획은 반 챕터만 읽는 것으로 수정된다.


그리고 이 밤에 나는 또 방에 덩그러니 혼자다.

위로받을 곳도 위로해줄 사람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없는 자정 정각의 외로운 나.

평생 외로울 팔자라고 하 사주 선생의 헛소리가 생각난다.


인생은 짧고 사람들은 무지하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너그럽지 못하다.

알량한 마음 때문에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눈앞의 작은 욕심 때문에 더 큰 것을 잃는다.


언제까지 아파해야 할까. 언제까지 슬퍼야 할까.

나는 나 스스로를 외롭게 하는 사람인가?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봄처럼 차가워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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