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빠'
이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각색된 허구의 글로, 실제 인물 및 사실과는 무관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N은 어떤 사건 이후 거의 한 달여간 우울 해했다.
N과 여러 친구들이 우연히 만난 모임에서, N은 A를 처음 만났다. N은 나의 친구였고 A는 나의 또 다른 친구 S의 남자 사람 친구였다. 복잡한 우연으로 술자리에 동석하게 되었고, 처음에 그들은 서로를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술잔이 오고 가며 대화가 길어지던 즈음, A가 무슨 말을 했고 N은 동조하며 열심히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그때 N은 자기도 모르게 A의 눈을 바라보게 되었고, A와 N은 한참이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었다.
N은 한 달이 지나서야 그날 A의 눈을 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하듯 말했다. A의 눈은 누구보다 갈색으로 빛이 났는데,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심장이 그의 눈에 빠져드는 것만 같이 아팠다고 했다.
N은 소위 ‘금사빠’이다. N이 처음에 A에게 반했다고 솔직히 말했더라도 놀라지 않았겠지만 N은 그날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틀 후 내가 내 또 다른 친구에게서 A가 N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말을 듣고 N에게 전했을 때에도, N은 그저 ‘그래, 고맙네.’하고 무심히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N에게 A와 다음에 한 번 다시 만나자고 제안했을 때에도 N은 아무 상관없다며 흘리듯이 말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나는 N과 A와 동석하는 일에 대해 자연히 잊어버렸다.
한 달이 지나 N을 만났을 때, 그녀는 상당히 지쳐 있었고 조금 야윈 것도 같았다. 술을 마시다가 내가 친구 S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N은 어렵게 한 달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스치듯이 두어 시간을 함께 있었을 뿐인 A 생각에 N은 거의 상사병처럼 앓았다는 것이다. A와 다시 만날 날을 상상했다가 혼자 기뻐하고, 좋아하고, 이후의 일을 상상하는 자신이 정말로 한심했다고 했다. N은 A가 너무나 다시 보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너무 슬펐고, 또 말을 해서 다시 A를 만난다 하더라도 부질없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이란 무엇이냐 하면, 사실 N은 이미 결혼을 한 지 10여 년이 지난 유부녀이다.
나는 그토록 이성과의 썸 타기를 즐기던 그녀가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보다, 원래 N의 기질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뭔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죄책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울해했다.
이제 썸 타기도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신분이라서, 혼자서 연애에 빠지는 상상을 하고, 버릴 수 없는 자신의 안정된 생활과 사랑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자신이 바보 같다 한심스러우면서도 무기력해졌다고 했다. 그리고 또 많은 기혼녀들이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을까, 아니면 자신이 원래 이성을 밝히는 못된 습관을 고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죄책감이 들고 슬퍼졌다고 했다.
다시 A를 만나고 싶지만 만나더라도 연애를 꿈꿀 수도 없기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A는 자유연애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안정된 가정을 버리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단지 무료한 일상을 탈피하기 위한 연애를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럼 이런 남자들의 심리는 뭘까? 대체 여자는 왜 만나는 걸까?)
최소한의 죄책감을 가진 그녀를 내가 위로했어야 할까. 일반적인 기혼자들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감정이라고 공감해 주어야 했을까.
어느 날 다른 친구 H가 수줍게 ‘나 실은 애인 생겼어.’라고 고백했을 때 손뼉을 치며 ‘아, 정말! 너무 좋겠다!’라고 소리치고는 황급히 부끄러워하던 N의 빨간 볼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