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H_2.
이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각색된 허구의 글로, 실제 인물 및 사실과는 무관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야, 실은 나 남자 생겼어’
내가 30대 중반이었던 어느 날 시내 한 백화점 중앙에서 우연히도 H를 떡하니 마주쳤을 때, 그녀가 내게 처음 한 말이다.
나는 그 당시 애당초 기혼남녀들의 사랑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끝까지 보지 않았다. 남자 주인공들은 대게 능력은 있지만 공감이 없고 막말하는 섹본남이고, 여자주인공은 그냥 봐도 완벽한 가사도우미처럼 살고 있는데 마치 신사임당처럼 그려지는 것 같았다. 바람나는 남자들은 늘 예쁘고 젊고 돈을 바라는 여자와 소위 놀아나고 있고, 여자들은 외로운 와중에 훈훈하고 미혼인 연하의 남자와 가슴 절절한 사랑에 빠진다. 그곳에서 남자들은 결국 돈만 밝히던 여자와 불행해지고, 가정만 바라보던 여자들은 훈남에 의해 탈출한다. 현실이 정말 그렇다면, 내 주변의 남자와 여자들은 도대체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평범하게 결혼하고 사는 걸까? 불륜이나 바람은 아주아주 특별한(?) DNA를 가진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가 기혼의 애인이 생겼다고 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우와! 하며 손뼉을 쳤다. 그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닌가. 혼 후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것은 나에게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허용되는 일종의 별난 취미나 특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H의 남편이 해외 발령을 난 지 거의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처음에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 주고, 아이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명절이면 항상 출국해서 시간을 함께 보내던 그녀의 남편은, 3년이 지나자 드문드문 연락을 하더니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남자 넷이 지내니 생활비가 모자라.”
H는 흔쾌히 그에게 필요한 만큼 쓰고 남으면 보내 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H는 다시 일을 구하고 돈을 벌기 시작한 것도 있지만, 애당초 그녀는 모든 일에 개의치 않으니까.
그리고 또 얼마 뒤 H의 남편은 H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같이 사는 남자 셋 중 하나는 애인이 있고, 한 놈은 매일 여자를 갈아치워. 한 놈은 이제 나가서 현지처를 두고 동거를 시작했어. 나는 욕구 해소를 못하니 힘이 드네.”
H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참을 수가 없으면 나가서 여자를 만나도 좋다고 했다. 그걸 들은 내가 어이없어 하자 그녀는 어차피 그의 성적 기능은 그다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 기회가 있어도 해소할 능력이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쾌활하게 웃었다.
그리고 H의 남편은 명절에도 점차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쩌다 오더라도 시댁으로 직행하여 H는 시댁에 아이들만 내려주고 혼자 돌아오기도 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의미 없는 부부관계. 그것을 지속하는 것에 조심스럽게 내가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어차피 서류일 뿐이지만 문서상에 아버지가 있는 것은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한 부모 가정이 되면 아이 셋의 양육비를 홀로 책임지는 것에 부담이 덜 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그냥 이대로 두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주의였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 것에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녀에게 일어난 이 모든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되었다. 아이 셋을 키우느라 좋아하는 일도 하지 못했고, 그렇게나 벌고 싶어 하는 돈을 못 버는 생활이 H에게는 더 어색하다고 느꼈다.
일부 여성들 중에서도 의미 없는 쾌락에 몸을 맡기는 경우도 더러 있을 수도 있다. 때로 더 깊은 관계에 맞닿기도 하며 혼란을 잠시 겪기도 하지만, 곧 자신이 처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하여 감정을 정리하고 급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녀도 의미 없는 일상 속에서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 했던 것이리라.
막 논다고 막사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의 생각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