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지 못한 문인
막상 글쓰기를 시작하니까 좀처럼 멈추는 게 쉽지 않다.
하루라도 몇 자 적지 않으면 개운하지 못하고 뭔가 찜찜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글이 되려면 어찌 됐든 문맥이란 게 있어야 하고 끝을 맺어야 하는데, 나는 항상 그것이 어려워 한 단락 이상 지속해서 쓰는 게 쉽지 않다. 지금도 이렇게 쓰고 있자니 벌써부터 끝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 오늘은 최근의 내 마음을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노트북을 펼쳐 들었지만, 지금 느끼는 것은 역시 글의 끝맺음에 대한 절망감뿐이다. 이것은 역시 부족한 필력 탓인가? 참, 노력도 부족하지.
작가라는 직업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그 업종에 등록(?)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생각한다. 업이 되기 위해 글이라는 것은 어떻게 써야 할까에 대해 또 생각한다.
제 멋대로 쓰는 글은 일기장에나 적으라고 하지만, 그러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글은 따로 있는 것인가? 그럼 일기장에 쓰인 나와 읽어주는 이들을 위해 따로 쓰인 나는 다른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실제 자아와 쓰인 자아 사이에 무언가 이중적이거나 거짓이 있으면 안 된다고 나 스스로에게 검열의 잣대를 들이댄다.
사실, 그러면서도 일기장에 글을 쓰듯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다 쏟아부어 쓴 어떤 사람들의 글을 볼 때는 그 자신을 너무 갉아먹는다는 생각이 들어 읽는 내가 다 창피할 때도 있다.
나는 회사에 진열된 신간 패션 매거진은 빼놓지 않고 집에 가져오는 편인데, 그 안의 화려한 화보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잡지에 실린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젊은 에디터들의 글은 꽤 유치하면서도 귀엽다고 느껴진다. 패션 업계의 특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일종의 쿨함과 치명적으로 보이는 무심함으로 치장된 글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읽게 된다. 역시 부끄러움이란 없는 것이 젊음인가. 때로는 읽으면서 ‘젊은이들이 무드를 아는 척하는 것은 역시 짜증 나.’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이런 꼰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항상 칼럼을 세심하게 읽는 편인데, 그들이 젊은 나이에 이미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는 것이 조금 부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되지도 않는 말을 바지런히 써보려 노력하지만 역시 업으로 삼을 만한 필력은 못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가지고 밥벌이를 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앞서 말한 에디터처럼 젊은 편이고, 대부분 지치고 무료한 삶을 그런대로 무심하게 살아가면서 뭔가 담담하게 한 획을 긋듯 의미를 툭 던져 버리는데, 그게 또 동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매번 며칠이고 빈 속에 술을 마시고,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그리고 괜한 일로 웃다가 울다가 노래하다가 약을 먹기도 하는데, 그래도 저마다의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사실 젊음이란 그런 것이다. 아까운 젊음을 흘려보내지만 쉽게 깨닫고 쉽게 잊는다. 그래서 그들은 글쓰기를 업으로 당당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쓰고 있는 나는 사실 젊어서 작가가 된 그들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미워하면서도 부지런히 그들의 글을 찾아 읽고 사 모은다. 나는 그들의 독자이고 그들에게 오늘 파 한 단, 당근 한 뿌리를 사 주는 정도의 인세를 바친다. 그러니 그들은 내가 아무리 비평을 해도 쿨하게 받아넘겨야 한다고 자위한다.
방금 나는 그들의 쿨한 척하는 글에 대해 비난했지만, 금세 그들은 내게 쿨해야만 한다는 문장을 썼다. 이것은 참 치졸한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안다. 잘 쓰지 못한다는 사실은 내 부족한 노력에 비하면 억울해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지만, 어쩔 때는 젊은 작가들에게 분한 마음이 생긴다.
오늘 처음 노트북을 펼쳤을 때 내가 어제 달리기 할 때의 벅찼던 마음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사실 지금은 아무 말이나 쓰고 있는 것처럼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해도 모자란 필력 때문에 슬프다. 열심히 노력하려는 열정도 부족하다. 그래서 작가가 직업인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 쓸쓸하다.
나는 매사가 그랬다. 너무 사랑하면 달아나니까 무서웠다. 중년이 된 지금도 글쓰기와 밀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필력이 모자란 것을 직면하는 것도 무섭고, 열심히 했다가 실패해서 내 바닥을 보는 것도 무섭다. 또 무섭다고 말하면 내가 참 모자라다고 느낀다. 모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또 무섭다.
이토록 초라한 슬픔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은 역시 어렵다.
자괴감과 조금은 분한 마음에 반려인과 저녁에 술을 마시다가 취해서 울기 시작했다.
반려인에게 내 장래 희망은 글 쓰는 전업 주부라는 말을 삼 세 번쯤 한 것 같다.
작가로 공인(?) 받고 기고하는 글의 마감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울고, 끝나면 잠시 웃고 부끄러워하다, 술 마시고 잊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일상을 상상한다.
나는 인정받지 못한 문인이다.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하면서 또 훌쩍거린다.
내가 나의 꿈을 잃지 않고 좀 더 잘 돌봤더라면, 조금은 더 애썼더라면, 지금쯤 인정은 받았지만 잘 안 팔리는 작가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유명한 문인들과 좋아하는 술을 매일 마시는 공인 작가 겸 애주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또 노트북을 펼친다. 마시다 만 술이 아쉬워 내 방에 홀로 앉아, 침대 옆에 청하를 한 컵 가득 따른 잔과 빅 파이 반쪽을 놓고 혼술을 하며 쓰고 있다.
나는 드라마 속 문인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인정받지 못한 문인... 혼자 되새겨보며 꽤 멋지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작가로서는 형편없는 글의 마무리이지만 너무나 행복한 밤의 결말이다.
나는 이 밤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