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자의 우울함

슬퍼하는 것은 버릇입니까?

by 배운

생을 살면서 슬프고 힘든 일을 겪고 나면 마음이 자라난다고 하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리만치 더욱 유리 멘털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잘 울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중년 여성이란 뭔가, ‘되게 매력 없지 않은가.’라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도무지 내 감정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그 서툴함은 마치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 수치심을 느낄 때도 있다.

게다가 한 달 중 10여 일간은, 어쩐지 형용할 수 없는 우울한 시즌이 찾아오고 폭풍과 같은 슬픔이 나 자신을 잠식시킨다. 호르몬의 작용인 것인지 (어쩌면 PMS일지도 모른다), 습관성 우울증인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 상태가 회복되기를 최대한의 객관화로 지켜본다.

주변에 의사로 일하는 한 지인은 내게, 스스로 병을 그렇게 마음대로 규정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우울감과 우울증은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경험에는 그랬다.


어제는 그런 우울한 시즌 중 하루인데, 아들이 오후 6시에 학원을 가서 밤 10시에나 돌아오는 날이었다.

평소에는 아들이 학원에 가기 전 이른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출근하는데, 오늘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식사를 얼기설기 차려주고, 저녁 식사까지 마련하지 못했다.

(예민한 나는 성장기 아이에게 음식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유기농과 고른 영양소가 들어가야 하고, 식단이 겹치지 않도록 늘 신경 쓰고 있다.)

그런데 회사에서 바삐 일을 처리하다가, 배달 주문을 하는 것도 깜빡 잊고 말았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부랴 부랴 음식을 시켜주었는데, 내가 오늘 주문한 것은 예정보다 40분이나 늦고 말았다. 결국 아들은 저녁을 먹지 못하고 학원에 갔다.

끝나고 집에 와서 먹을 수도 있고, 학원 앞에서 간단히 간식을 사 먹을 수도 있는 중학생 아들인데, 나는 미처 밥을 못 먹고 간 아들 생각에 회사 화장실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하다가 엉엉 울고 말았다.

그깟 하루 저녁을 늦게 먹는 것뿐인데, 나는 거기에 배가 고픈 채 세 시간 동안 수업을 들으며 꼬르륵하며 기운 없어하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에 보태고 있었다.

한창 클 나이인데 최근 왠지 입맛이 줄어든 아들의 구부정한 어깨가 떠오르고, 나 같은 어설픈 엄마를 만나 근 14년을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자꾸만 철철 넘쳤다.

게다가 오늘은 어쩐지 어두운 옷을 입고 싶은 우울한 날이어서, 머리카락도 질끈 묶고, 화장도 안 한 상태이다 보니, 더욱 쓸쓸한 모습이 되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당에 초가 켜져 있는 모습을 보니 또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 바보 같았지만 나는 나의 왜소한 마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 수 있도록 펑펑 울어버렸다.


어쨌든 오늘 나의 우울감을 웬일로 알아차려 준 반려남은 내게 식감이 좋은 두툼한 회를 사주었다.

나는 있을 수 없는 의외의 다정함에 놀랐지만, 약간 울면서 소주와 함께 그것을 열심히 먹었다.

덕분에 나는 2주간 해왔던 다이어트를 망치고 말았지만, 다행히도 기분이 좀 나아졌다.

고작 이런 걸로 기분이 좋아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 단순함 때문에 내가 자존심이 상해한다는 것을 아는 반려인이 애써 모른 척해준다는 사실이 분했지만, 어쨌거나 기분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나는 절대로 먹는 것 때문이 아니라 배려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나아졌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이 사실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나란 인간은 이런 소소한 다정함이 너무도 그리운 사람이다.


내게는 일상의 소소하고 잔잔한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 애정에 대한 상실감이 내 오랜 습관성 우울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눈치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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