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자의 주사

중년의 무드

by 배운


단언컨대, 생을 살아오는 동안 나보다 더한 여성 애주가는 만난 적이 없다.

나 같이 술에 진짜 정말 매우 진심인 편인 40대의 여성이 있다면. 상대가 누구든, 술자리가 어디 건, 사람에 대한 관심도 호기심도 별로 없지만 술이라면 정말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술 한잔, 아니 댓 병 하고 싶다. (물론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술 좋아하는 게 뭐가 자랑이겠냐.’ 나조차도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다음 생에 태어날 때에는 술을 입에만 대도 기절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쯤 되면 핀잔을 주듯이 말한다.

‘술을 안 마시면 그만이지. 알코올 중독 아니야?’


자,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성을 좋아한다고 모두 성중독자가 아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 식탐이 많은 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결국 이 글을 쓴 뒤 몇 년 후인 지금은 검사 결과 알코올 의존 성향이 ‘매우 높음’으로 나와서 약간 절주 중인 상태이다.)


그러나 내가 매일 술을 먹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나는 일주일에 한 두어 번, 많으면 세 번도 빼놓지 않고 마시는 편이지만, 지금껏 건강에 해로운 일이 생긴 적은 없었다. ( 소주 1~2병에 끄떡없는 아버지로부터의 유전력과, 놀고 싶은 중년의 마지막 체력이 발악하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또한 나는 애주가이지 말주가(술을 말술로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어느 날은 미친 듯이 부어라 마셔라 할 때도 있지만, 오래된 내 친구들이 말하기를 나는 술을 어느 정도 만취가 되면 술잔을 계속 들고 있는 채 마시지는 않는다고 한다. (사실 블랙아웃의 횟수가 잦아져서 조절하는 상태지만...)


술을 진짜 좋아한다고 인정한 것은 마흔이 넘어서다. 그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진짜 술을 잘 마신다 할 때에는 무척이나 수치스러웠지만, 이제는 내가 술을 사랑하고 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내게 술이란 말하자면, 나쁜 남자이다.

만나면 너무 좋지만 자주 내게 상처를 주고, 돌아서면 다시 보고 싶고, 힘들 때 위로받지만 날 아프게 하고…

그러면서도 잊지 못해 다시 찾게 되는 존재.


내 주사는 취하면 평소에 입도 대지 않는 단 과자가 매우 당긴다는 것이다. 슬프고 우울한 날에는 더욱 그렇다.

오늘도 집에서 혼술을 하다가 단 것이 못 견디게 그리워 편의점으로 향했다.

오늘 편의점에서는 대대적인 행사를 했다.

몽ㅅ00 2+1, 빅파땡 2+1, 오레오 2+1,,,

이건 너무하다. 너무한 처사이다.

난 몽쉘이 도 빅파땡도 오레땡도 한 가지씩 한 입만 먹고 싶단 말이다.

눈물을 머금고 한 가지씩 사니 7,700원이 나왔다.


그렇다. 나는 오늘 또 한 번의 매몰찬 남편의 타박에 입을 닫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원망과 한숨과 내 인생의 좌절스러움이 끝도 없이 나를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다정하고 항상 여자의 말을 존중해 주고 따라주는 든든하고 우직하고 순한 남편을 가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나며, 다시 비교하고 내 현실에 좌절하고, 나의 그릇된 판단과 그릇된 판단을 하게 만든 나의 환경들과, 나의 어리석음을 자책하고 원망하며 끝도 없이 괴로워한다.


편의점에서 나왔지만 집에 바로 가지 않고 계속 달린다. 숨이 턱에 차니까 그를 용서해 보려 노력한다. 20분 만에 나의 마음은 뒤바뀌며 혼란스럽다.

그래, 그도 자기가 잘났다고 하지만 자기가 모르는 세계가 있겠지. 본인의 가학성과 폭력성과 자기만의 고집, 자기만 옳다고 믿지만 실은 굉장한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는 걸 본인이 모르는 걸 거야. 끝없이 그를 나의 구렁텅이 속으로 끄집어 내려본다. 그리고는 용서해야지...라고 말한다.


내가 뭐길래 그를 용서하나? 하지만 그는 나에게 상처를 줬다. 누가 봐도 명백히 객관적으로 그의 잘못이다.

나의 의견을 말한 것뿐인데 굉장히 화를 내며 무시를 했다. 그것도 아들 앞에서... 항상 나의 생각은 그렇게도 멍청하고 한심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나. 그것에 대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화가 솟구친다.

이 사실 하나로 평생 같이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들며.. 이혼과 졸혼을 반복해서 생각해 본다.


뛰면서도 쉬지 않고 남은 여생을 위해 어떻게 잘 헤어져 볼까 에 대한 궁리를 하기 시작하다가, 올초에 읽었던 비폭력대화 책의 대화법을 떠올리며 나의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려 애써본다. 그가 아들 앞에서 화를 낸 것은 사실, 무안하고 타박받았다, 무시당했다고 여기는 것은 내 의견... 그래서 사실에 대한 나의 기분을 그에게 톡으로 전달해 본다. 책에서 배운 데로 앞의 부분은 인정과 칭찬의 내용을 붙이고 뒤의 부분은 나의 생각을 말해 본다.


'다 100점인데 고칠 수 없고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에 항상 좌절이 되네. 나의 좁은 마음의 그릇에 이거 하나 담기가 이렇게 어렵네... 그 자체로 인식하고 인정하려고 노력하지만 몇십 년 내가 견뎌내고 무뎌질 수 있을지... 눈물이 난다.'


조금 울다 눈물을 닦고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어찌 됐든 이 상황을 무마하려고 애써 본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내 그릇이 옹졸해서 인가.. 내 그릇은 작고 삐뚤빼뚤 모나 있지만, 매우 무르다.

그래서 그의 차갑고 뾰족한 얼음송곳이 나를 찌르면 매우 아프다... (얼음송곳은 내가 그에게 지어 준 별명이다.) 깨져 버린 마음의 거울을 닦고 표면에 다시 칠을 해도 원상복구가 어렵다.

이렇게나 나 또한 어려운 사람이다. 이런 나라도 인정해 주면 좋겠지만 나를 받아줄 수 없는 사람.

나는 과연 앞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버텨낼 수 있을까?

나의 좁은 마음의 그릇에 한 사람조차도 오롯이 담기가 이리도 힘들다니.

그러나 내가 용서하고 그를 그 자체로 인정해야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해와 인식은 다르므로... 한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해야지.


편의점에서 산 과자들을 우물거리며 친한 단골 포차 사장님에게서 얻어온 귀여운 소주잔에 술을 따라 마신다. 친구들에게 술상을 찍어 보내며 내 꼬락서니에 동정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 저마다 앞에 놓인 자신들의 술상을 찍어 보낸다. 동시대를 버텨 내는 여인들의 그것에 나는 빵 터져 울다 웃는다.


그 힘으로 내일 아침 아들을 먹일 쌀을 박박 씻으며 눈물을 닦아보는 40대의 주사…

이것 또한 중년의 무드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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