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1)

문을 두드리다

by 배운

2022년 1월, K와 나는 마침내 협의이혼 서류에 각자 서명을 마쳤다.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기 전 K의 마지막 부탁으로, 마지못해 부부 상담 센터에 들어섰다.

따뜻한 음악이 흐르고 뜨끈한 차 주전자가 놓인 아늑한 방 안에서, 우리는 상담 선생님이 주신 서류에 방문한 목적을 쓰게 되었다.


『상담의 목적』

- K : 상담을 통한 상호 이해와 원만한 결혼 생활의 지속

- 나 : 1) 인간적인 합의에 의한 결혼 생활의 종결

2) 한 아이의 아빠로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하여 좋은 아버지로 살아가기를 바람


종이에 적힌 글을 보는 K의 얼굴을 나는 차마 바로 바라보지 못했지만, 그의 표정이 나를 항상 공포에 떨게 하는 예의 그 매섭고 차가운 눈빛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온몸이 오금이 저리듯 덜덜 떨리기 시작했지만, 상담 선생님이 앞에 있다는 사실에 의지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네, 두 분이 쓰신 내용을 보니 의견이 매우 다른데, 어떻게 오신 건지 한 번 직접 말씀을 들어볼까요?”


선생님의 말이 마치자 K는 특유의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과 큰 목소리, 바로 선 몸짓으로 말했다.


“네, 제 자신은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제 자신의 가치관과 태도는 어디 내놓아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문제는 일으키는 건 항상 저 사람이라고요. 여기에 올 때에도, 상담을 잘 받고 해결하자고 서로 합의를 한 상태였는데, 이게 뭡니까? 내 참 기가 막히네요.”


나는 마음속으로 수십 번 연습했던 내용을 되짚어 보며, 작정한 듯 쏟아내었다.


“집에만 가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자존감이 땅바닥으로 내려앉는 기분입니다. 사랑 따위는 기대할 수 없고, 기대하지도 않지만 외로움에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차라리 혼자가 나아요. 저는 집에서 혼자서도 잘 있고 집에 있는 걸 즐기는 사람인데, 이 남자와 같이 있으면 답답하고 숨이 막힙니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마음대로 못 보게 하고 화가 나면 TV 전원도 마음대로 꺼버리는 사람이에요. 매일 주말 낮에 낮잠을 자는데,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시끄럽게 하면 있는 대로 신경질을 내기 때문에 저희 아이와 저는 항상 소곤거리며 발뒤꿈치로 걷습니다.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같이 가 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렇다고 제가 운전하는 것도 사고 낼 것이 뻔하다며 못하게 합니다. 모든 것을 지시하고 통제하고 가르치려 들고, 본인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냅니다.

솔직히 남편의 가족들 마저도 그가 이기적이고 욱하는 성격이라고 해요. 시어머님은 항상 저에게 남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달래고 가르쳐 주며 살라 하지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폭력성에 대해 절대 인정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와서 제가 왜 다 큰 어른을 교육시켜야 하죠? 잘못 교육시킨 시부모님에게 도로 보내 버리 고픈 심정입니다."


K의 얼굴은 다시 얼음과 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돌변하였다.


“여기서 우리 부모님 얘기가 왜 나 오지? 허 참,, 기가 막혀서.. 제가 대체 뭘 그리 잘못했다는 겁니까? 항상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 다니까요? 제가 술을 합니까, 도박을 합니까? 바람을 피우길 합니까? 저 사람 이야말로 알코올 중독에 남의 시선만 의식하는 여자라고요!”


나는 조금씩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지만 물러서지 않기로 다짐한다.


“제가 부모님 얘기를 꺼낸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남편을 그렇게 본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제가 볼 때 그 사람은 단지 본인의 인생에 이혼이라는 빨간 줄이 그어지는 것이 싫고 아이 때문에 이혼을 안 해주는 것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없어요. 전 이러한 결혼의 지속에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제 생존과 평안의 문제입니다. 이혼하면 다 해결되고 아이도 안정될 것이에요. 저는 술을 줄일 것이고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금도 아이와의 시간을 위해 출근 전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짓고 일이 많으면 잠을 줄여서라도 아이를 챙기고 있어요.”


“양육권은 절대 포기를 못합니다. 이 사람은 애를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가 급하게 끼어들자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남편님. 말을 끊지 마시고, 부인님 얘기를 더 들어볼까요? 그래, 부인께서는 지난 시간 동안 왜 그렇게 힘드셨던 것인지 얘기를 좀 들어봐도 될까요? “


숨을 재차 고르면서 나는 쉬지 않고 쏟아붓는다.


“선생님, 저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가 엄마와 언니를 폭행하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는 항상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었지만 엄마와 언니에게는 그렇지 못했어요. 저는 아버지에게 미움과 사랑, 모두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저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했던 엄마에 대한 원망, 그리고 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았어요. 하지만 제게 남성의 폭력성이라는 것은 크나큰 트라우마이고 좀처럼 극복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다 2014년에 아이의 희귀 질환 발병 및 회사 사수의 급작스런 사망을 연달아 겪은 뒤, 이후 2015년에 이동한 부서에서 다소 폭력적인 상사들을 만나게 되면서 공황장애가 생겼고, 그나마 제 방패막이되어 주었던 직속 상사 또한 쓰러져 입원하게 되면서 19년에 번아웃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20년 초에 드디어 제 자신이 쓰러졌고, 저는 병원에서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한 동안 회사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지난 결혼 생활 만 14년 중에 직전 6년 간을 공황장애와 우울증, 그리고 경도 성 양극 장애 진단을 받았고 약물로 버텨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6개월 간 수 차례의 정신과 내원과 상담, 그리고 다방면의 트라우마 치료와 감정 코칭 및 비폭력 대화에 대한 여러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글쓰기를 하면서 원가정과는 거리를 두었고 마음속으로 부모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저를 공포로 몰아넣은 상사들 또한 저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면서 원인이 해결되었어요.

그러나 남편만은 해결되지 못하였습니다. 치료기간 동안 병원에서 수 차례 남편이 동행할 것을 권유했고, 저 또한 수 차례 남편에게 애원하며 부탁했지만, 절대 본인에게는 문제가 없다며 매번 거절해 왔습니다.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가장 저를 이해하지 못했고, 항상 제 잘못이라며 저를 비난했어요. 저는 이 사람에게 수년간 가스 라이팅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그로부터 갖은 폭언 및 조롱과 멸시를 당해왔어요.

제가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자, 그가 상담을 먼저 제안했지만 저는 이 상담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5년여간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저는 드디어 자아를 찾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더 이상 남편에게 조롱과 멸시, 협박과 상처되는 막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제 자신은 누구보다 소중합니다. 상담을 통해 이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있겠죠. 제 말은 듣지 않아도 전문가의 말은 경청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람이 된다 해도 내게는 더 이상 좋은 남자일 수 없을 것입니다. 남편은 한 번도 제 편인 적이 없으며, 제 기준에서 이 사람은 공감이 없는 소시오패스 혹은 조용한 성인 ADHD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더 이상 저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취급을 받으며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제 삶을 찾고 제 자신을 더욱 돌보고 싶습니다. “


그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항변을 시작한다. 나는 그 마저도 그의 자존심에 여기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마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는 완전 정상이고, 자존감이 상당히 높은 사람이에요! 제가 결혼 초 술을 마시고 부인에게 실수를 한 것은 저도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미안하고 죄스러워요. 그 부분은 평생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술도 끊었고, 부인이 힘들었던 것을 알기에 나름 노력했는데, 이 사람은 매번 이런 식입니다!! 아들이 이제 중2인데, 아들 생각은 전혀 안 하는 여자라고요!”


나는 조금씩 울먹이기 시작한다. 젠장, 꼭 중요한 순간에는 눈물부터 나는 내가 싫다.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저는 생존을 위해 여기에 온 것입니다. 제가 잘 살아야 아들도 행복할 테니까요. 저는 정말 인류애로 버티는 중입니다. 상담 전에는 그나마 인간 갱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를 위해 좋은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상담을 허락한 것입니다. 제 말은 안 들어도 남의 말은 잘 듣는 사람이니까요. 이렇게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것만 해도 상당히 감사할 일이겠죠. 그러나, 잘못을 해서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08년과 13년에 K가 저에게 물리적인 공포를 가했던 일, 그것은 그가 만취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저는 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어요. 그 이후에 신체적 폭력은 없었지만 항상 말과 눈빛으로 항상 저를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해왔어요. 제가 이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겪지 않아도 될 공포스러운 상황들을 너무나 많이 겪어왔어요. 저는 남편이 한숨만 쉬어도 신경안정제를 먹어야만 잠을 자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었습니다. 이제 저는 약을 끊은 지 1년이 되었고, 더 이상 약이나 치료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요.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우선 제가 살아야 합니다.”


“이 사람도 짜증이 장난이 아니에요! 맨날 술이나 먹고 밖에 돌아다니고… 아이는 절대 이 사람이 못 키운다고요!”


그의 곧던 자세가 의자에서 90도로 삐딱하게 돌아서며 다리가 꼬아진다. 그의 얇고 차갑고 흰 손가락이 꼬인 무릎 위에서 까딱거리기 시작한다. 눈은 표독스럽고 야비하게 빛난다. 나는 다시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상담 선생님은 이 모든 상황을 재빠르게 알아차린다.


“네… 부인님이 잠깐 들어만 보아도 쉽지 않은 삶을 사셨고…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남편을 생각하면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일까요? 지금 딱 떠오르는…?”


“…. 네….. 전….. 그냥… 남편이 정말 무. 섭. 습. 니. 다...”


여태껏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에 대한 마음이 모두 정리됐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모종의 원한과도 같은 마음이었다.


“상담 시간이 90분인데, 지금 한 시간이 흘렀고, 우선은 남편님과 남은 시간 개별적으로 얘기를 더 해봐야 할 것 같군요. 부인님은 먼저 나가 계시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약 30여분이 흐른 뒤 다시 방안에 들어섰을 때, 유리처럼 날카롭게 날이 섰던 그의 눈꼬리는 소꼬리만큼이나 온화하게 내려가 있었다.

이윽고 상담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저는 남편님께 비폭력 대화에 대해 말씀드렸어요. 이번 한 주 동안 남편분께서는 우선 부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해 주세요. 그리고 이것 하나만 지킵니다.

‘절대 욱하며 폭발하여 화내지 않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이것을 잘 지켰는지 떠올리도록 하세요. 단, 그전에 아내분과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아내분은 다음번 부부상담이 아닌 개별상담으로 만나 뵙도록 하지요.”


나는 남편의 선해진 그 눈빛에 속지 않으려 한다. 그는 항상 그래 왔다. 평생 들어보지도 못할 폭언과 경멸의 눈빛을 쏘아 댄 뒤, 다음 날이면 으레 사과하고 혼자 해결하고, 내가 풀지 않으면 다시 소리를 쳤다. 그는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이 뻔했다. 나는 이번이 그와 제대로 싸울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나는, 내 안의 에너지를 믿기로 한다. 나의 트라우마와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그의 잘못을 객관화시킨다. 그와 같이 상대방에 대한 혐오의 발언을 쏟아낸다 해봤자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될 뿐이다.


그런데 마음속에 이 찜찜함은 무엇일까… 나는 선생님께 내가 완전히 자의식이 높은 온전한 정상인이라고 소개했는데, 왜 다음 상담은 전적으로 잘못한 남편의 상담이 아닌 내 개별 상담이어야 할까? 어쩐지 상담 선생님은 내 속에 남은 불안의 찌꺼기를 보신 것 같았다. 나는 약간의 수치심을 느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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