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변하는 순간을 어떻게 규정할까. 하릴없이 SNS를 들춰보던 어느 날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식목일=히트텍 넣는 날, 어린이날=선풍기 꺼내는 날, 추석=선풍기 넣는 날, 개천절=히트텍 꺼내는 날, 수능=전기장판 켜는 날, 미 X쵸코 광고 개시=롱 패딩 꺼내는 날…’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기똥차다고 생각하면서, 3년여 전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그때의 나는, 다른 건 몰라도 계절 한 가지는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
바로 나에게만 서둘러 찾아오는 ‘겨울’.
스산하고 우울해서 청주 한 잔에 어묵탕이 생각나는 시기는 코끝을 스쳐 가듯 잠깐이었다.
가을이 지나면 내게만 유독 빨리 찾아오는 겨울은 1년 중 절반 이상 계속되었다.
나는 매일 회사에 3등 안으로 일찍 출근하고 늦게 가던 사람이었다.
직원들은 내게 도대체 밤새 집에 갔다 오긴 한 거냐고 농담처럼 아침 인사를 하고, 근무 시간에 늘 자리에 자석처럼 붙어있는 나를 보며 좀 움직이라고 했다.
늘 평균 12시간 정도의 근무를 마치고 나면 같이 일하던 부장과 해장국에 소주 각 1병씩, 그러다가 특별하게 일이 꼬인 날이면 ‘술이 나를 먹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마신 후 새벽 귀가, 그리고 또 어김없이 6시 기상, 남들은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라고 했지만 나는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릴 때마다 가차 없이 전신을 휘감는 고통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알람에 맞춰 정신이 깨어남과 동시에 온몸 혈관 구석구석을 찌르는 듯한 통증. 가까스로 납덩이에 눌린 듯한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릴 때, 가늘고 긴 쇠 송곳으로 가르는 듯한 발바닥의 고통. 차가운 공기가 전신을 때리다 못해 뼈를 파고들면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까지 적어도 십여 분은 기다려야 했다.
밤 사이에 갑자기 닭살이 돋을 만큼 알 수 없는 오한으로 여러 번 깨고, 손발은 늘 얼어붙을 듯이 차가웠다.
날씨가 추워지면 고통은 더욱 극심해졌다. 차가운 바람이 살짝만 스쳐도 칼로 몸을 베는 것 같았다
그러한 아침이 오면 나의 반려인에게 내가 처음 하는 말은, ‘Winter is coming.’
그럼 그때는 보일러를 틀어야 하는 때가 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이 규칙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 나의 두 동거인은 여전히 반소매를 입고 돌아다니며 아직 보일러는 이르다고 말했다.
어느 때부터는 무엇이든 잘 집중하지 못해서, 좋아하는 책을 읽어도 두 장 이상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또 어떤 것이든 잘 잊어버리기 일쑤였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농담으로 ‘과한 알코올로 뇌세포가 파괴되고 있다’고 말하며 웃고는 했다. (어느 정도는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으레 달고 다니는 잔기침과 가라앉는 목소리가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도 점차 거슬리기 시작하면서, 혹시 성대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음성 클리닉 병원을 검색해 보기도 했었다.
특히 아침이 되면 매우 울적하고 기분이 가라앉고는 했는데, 이 때문에 상사에게 여러 번 충고를 들었다.
신입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다른 부서 부장이 나를 두고 직원들에게 했던 경고(?)가 생각난다.
“다들 잘 알아 둬. 겨울이 되면 여기 팀장한테는 적어도 아침 10시 반 전에는 말을 시키지 않는 것이 좋아. 11시에나 돼야 가동이 시작되거든. 예열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니 궁금한 게 있어도 꾹 참고 기다려. 안 그러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
나는 내가 저혈압이어서 아침에 늘 힘이 없는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그 당시 이 것이 나의 일상, 나의 루틴이었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일을 하다 보니 일이 많아졌고, 집에 가면 늦은 귀가에 대해 반려인과 더러 다퉜다. 집에 가기 싫다 보니 더욱 일하고, 그러다 보니 주요 부서에 주요 직책도 맡았다. 특별히 나의 커리어에 대한 집착이나 일에 대한 성공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승진도 했다. 그저 주어진 대로 뼈가 부서지게 일하는 것이 현대판 회사 노비의 직분이라고 당연시 여겼을 뿐이었다. 극심한 불면증은 모든 직장인이 흔히 겪는 단순한 직업병이라고 생각했고, 온몸이 칼이 베이듯이 아픈 것은 역시 운동 부족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 증상들은 수년간 반복적,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져 마치 내 몸의 일부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또한 이 것이 단지 내가 남들보다 예민하며 과도하게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2019년 사월, ‘봄바람’이라고 불리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차가움이 귓불을 훑고 지나가는 어느 날이었다.
내가 거의 사라졌다고 믿었던 나의 지병 (사실 나는 그전에 5년간 공황장애를 앓았었다)이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나타났고, 나는 병원에 다시 들렀다. 그것은 마치 신상 옷이 나왔으니 한 번 샵에 구경이나 가보자고 우연히 퍼뜩 떠오른 생각과 다를 것이 없었다.
“거의 2년 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의 의사가 물었다.
“네, 선생님. 저는 진짜 다 나아졌다고 생각했거든요. 일도 술도 줄였고, 말씀하신 대로 규칙적으로 살려고 노력했어요. (왜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 얼마 전에 증상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남아있던 약을 먹고 금세 좋아졌어요. 심지어 약을 먹고 푹 잠이 들었고, 깨고 나서는 머리가 너무 맑았어요. 2년 전에 주신 약이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로 평소에는 약이 필요가 없어요.”
“네. 그런데 ‘왜 다시 와 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우선은, 조만간 제가 다시 약이 필요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비상약을 준비해 두기 위해서 왔고요. 그리고…. 그리고요….”
나는 예기치 않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고, 서럽게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너무 우울하고 불안해요. 제가 대체 왜 이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선생님 갑자기 (울어서) 너무 죄송해요. 저 같은 사람 많이 오나요? 제가 왜 이러는 거죠?.”
의사는 내 앞에 티슈 박스를 조용히 밀어 두고 상담 시간이 끝나 갈 때까지 내가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다음 날 나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고, 나흘 뒤 진단서를 받았다.
병명은, ‘명백한 우울증. 완치되지 않은 공황장애. 사람들로부터 심히 위축되어 있는 사회불안’이었다.
그리고도 나는 1년을 거의 다를 바 없는 상태로 버텨냈다.
회의실에 있는 상황만으로도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은 공포를 느끼면서도 공황장애 약으로 버텼다.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 나날을 불면증 약으로, 이유 없이 눈물이 나면 우울증 약을 먹었다.
그러던 20년 5월의 어느 날, 휴가를 반납하고 밤낮으로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 단 30분 만에 전면 재보고로 끝나고, 나는 퇴근길에 내내 울며 집으로 돌아왔고, 2주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우울증으로 사람이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내게 글쓰기와 달리기가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그 우울한 시간의 세상에서 지금이라는 세계로 건너오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나를 써야 했다. 나를 쓰고 나를 알면 나를 통해 보이는 세상을 알게 된다. 맞고 틀리고는 없다. 겪어 온 내가 있고 앞으로 겪어낼 내가 있었다.
나는 무조건 닥치는 대로 썼다.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 갔고, 원인을 찾기보다 나의 마음의 상태를 언어로 말하는 연습을 했다. 그 무렵 알게 된 작가 ‘오소희’는 말했다.
감정이나 어떤 사물이 그 이름을, 언어로써 불려지지 않을 때 그것들은 세상에서 묻혀 버린다.
어느 날 문득 쓸쓸해져서 빨리 자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글을 쓰거나 지나간 내 글들을 읽어본다. 나 자신이 한심하고 불쌍해져서 더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마음이다.
‘이런 슬픔과 우울에 빠져있던 시간을 나는 잘도 이겨냈구나.’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나를 기억할 수 있게 글을 써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 계단을 내디디니 내가 보였다. 나를 객관화하고 나를 보게 되니 주변이 보이고 세상이 보였다. 매 해가 되면 계획을 세우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 보려던 노력들은 항상 물거품이 되었기에, 매번 나를 자책하고 언제부터 인가 계획도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말자고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러던 내가 나의 가장 깊은 면을 한번 털어내고 나니 공원을 걸을 힘이 생겼다. 정상적인 두 발이 있는데도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조차 힘들었던 나날을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하고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천천히 일상이 내 것이 되니 차가운 공기가 시원해졌다. 뜀박질을 하고 입과 코로 훅 하고 들어오는 공기는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춥다 덥다를 느끼는 것은 단순한 감각을 체험하는 것이지 진짜 세상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뛸 때 귓불에서 바람과 내 숨소리가 나의 달팽이관 속으로 뱅글뱅글 뒤섞여 들어오는 소리, 타박타박 뛰는 내 뒤를 부지런히 쫓는 내 그림자, 계절이 바뀌는 순간에 달라지는 바람의 냄새, 나는 이제 그것들을 느낌으로 인하여 살아있음을 체득한다. 내 두 발이 땅 위에서 부지런히 달려 나가고 있음을 안다.
나는 이 세계의 작고 작은 먼지일 뿐이지만, 그럴지라도 또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가슴 벅차게 받아들인다.
눈물이 그득그득 차오르는 행복을 느낀다.
며칠 전 공원 트랙을 달리고 있는데, 나무들 사이로 엿보이는 구름 속에서 노을빛이 내게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벅찰 듯한 흥분은 나를 뒤덮고 와르르 눈물이 쏟아졌다. 일상이 감사해서 마음에서 우지끈! 하는 소리가 났다.
달리기가 끝나면 세탁소에 들르려 했지만 나는 나의 종착지로 곧바로 뛰어가기로 결심했다.
그곳은 바로 내가 마침내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곳, 나의 남편과 아들이 기다리는 집이었다.
나는 마침내 죽은 인생을 끝내고 진짜 내 삶을 느끼고 있음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소소한 인생의 성취는 다른 것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긍정의 경험은 나를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가로 만들고, 나를 새롭게 밀어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인생에서 매일이라는 새 수레에 더 많은 것을 담는다.
저급한 욕망의 눈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한 가치 있는 세상으로 시선을 옮겨간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가을이 다가온다.
"내가 보일러를 틀자고 한 게 보통 언제 적이었지?" 반려인에게 물어본다.
"그러고 보니 보통 9월 말? 10월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왜 달라졌어? 무섭게..."
반려인은 웃으며 농담을 한다.
마흔이 넘어서야 내 인생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일상을 살지만 나의 일상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매일의 루틴 함은 늘 새롭다.
이 자유가 너무 좋아서 이제야 나는 40년 간의 정신의 감옥살이에서 비로소 해방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