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얘, 그 애만 보면 우울하다. 초라해지고 우울해진다.
어젯밤도 걔 때문에 아버지도 깊은 잠도 못 자고, 아들놈이라고 하나 있는 게 마흔이나 되어 장가도 못 가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마흔 살의 내 남동생이 주말에 부모님에게 다녀간 모양이다.
엄마는 막내아들이 돌아간 다음 날이면 으레 내게 푸념 섞인 카카오톡을 보낸다.
때때로 새해나 연말 즈음에는 ‘인생 헛살았어…친손주도 하나 없고…’라는 아버지의 술주정을 듣고는 한다.
정작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것은 내가 아니다.
유독 그날은 엄마의 푸념을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갑자기 치미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나는 핸드폰을 붙들고 마구잡이로 질주했다.
“엄마, 그만 좀 해! 다른 사람들은 자기 것에 만족하고 잘들 사는데, 다른 사람들 보통의 1만 못해도 세상 무너지는 듯이 말하고! 직장 돈 적어 우울, 결혼 못 해 우울, 아이 못 낳아 우울… 자식이라는 죄로 부모한테 평생이 제대로 된 인간 취급도 못 받고, 그 애 인생이 더 불쌍하고 초라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돌 던지고 비난해도 내 자식은 괜찮다 감싸주는 부모 못 만나고, 평생을 인정을 못 받고 지겹다 지겨워. 자식 결혼 못 해서 우울하다고 하는 부모를 둔 자식은 자기 인생 실패한 것만 같고 얼마나 괴로울까? 죽을 둥 살 둥 잘살아 보려 발악하는데 마흔이 되어도 부모에게 이런 말이나 듣고…”
“말해봐야 본전도 못 뺀다. 잘했다 칭찬했던 건 흘려버리고…”
슬그머니 엄마는 채팅 창에서 자취를 감춘다.
사실 이런 하소연을 듣고 있는 나는 오히려 부모님이 말하는 ‘정상인’의 삶을 고스란히 밟고 살아왔다.
재수한 번 없이 착실하게(?) 대학교를 나와, 졸업도 하기 전 4학년 때 취업을 하고, 적령기라 일컬어진 26살에 결혼을 했으며 서른이 되기 전 아들을 낳았다. 직장 생활은 이직 기간 한 달을 제외하고는 20여 년째 지속하고 있다.
이 평탄한 코스에서 벗어날 틈만 보여도 인생이 모두 끝나버리는 공포를 느꼈던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닌 나의 부모였다. 나의 학업은 물론이고 취업과 결혼, 이후의 재산 증식, 출산과 내 자녀의 양육 및 교육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불안으로 잔소리와 간섭을 했기에 늘 나는 내 인생을 마치 방어기제와 같이 정상적인 시계 바퀴처럼 돌렸다.
내가 자신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부모의 ‘정상인’의 기준에서 걱정거리가 되는 부분을 걸러내고 서서히 말하지 않게 되자, 비로소 부모님은 한풀 꺾어지며 내 삶에서 조금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나이가 들었음을 지각해서도 아니고, 소용없음을 알아서도 아니다. 내 인생이 그들이 원하는 완성도에 부합하게끔 보이도록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최선임을 알았다.
그렇게 나를 보편적인 사실 속에 사는 ‘평범한 정상인’으로 다소 미화시키고 내 고민을 묻어버리자 부모님의 인생이 서서히 가을을 넘어서고 저물어가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조금은 서글펐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이 내 삶에 개입했던 수많은 흔적이 서서히 사라질 때에야, 나는 비로소 온전히 나 자신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나는 잘 산다는 기준 아래에서 맹목적으로 버텨야만 했던 시기를 넘어서는 시점에 드디어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모종의 해방감이었다.
잘해도 정상인, 못하면 실패작. 그러한 부모에게서 삶의 무게에 대한 위로나 응원 따위는 받을 수 없는 자식이라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내 삶에서 가장 결핍되었다고 생각해왔다.
이제는 그런 기대를 바라는 대신 힘들 때마다 나 자신이 나의 등을 두드려주는 수밖에 없다.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고 내 부모와의 통화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라도 하면 ‘요즘 같은 때에 일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악착같이 다녀. 얼마나 좋아’라는 충고를 받는다. 그런 날에는, 늦은 밤 내 아들이 먹고 남긴 조기의 남은 부분을 물만밥 위에 올려 꾹꾹 욱여넣고는 반주로 소주를 곁들인다.
나는 나를 위로하는 것으로 부모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지만, 남동생은 어쩐지 안쓰럽다.
사실 동생은 어떤 연유로 최근 재정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이미 몇 년 사귄 여자 친구와도 차마 결혼을 서두를 수 없다. (애인이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다. 알게 되는 순간 엄마 권사님은 다시 100일간의 새벽기도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마흔의 결혼하지 않은 내 남동생은 아직도 부모에게 인생의 실패이며 무능과 부끄러움의 대상이기에, 그러한 문제를 털어놓을 수조차 없다.
아들이 결혼하지 않아 왜 당당하지 못한 지, 남들이 물어볼 때마다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1940~5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고, 이해하라고 하는 것은 머리로 할 수 있는 위로이다.
엄마와의 채팅에서 핵폭탄 같은 장문의 상처를 날린 후에는, 동생에게 위로의 카카오톡을 보낸다.
‘그깟 돈 얼마 잃었다고 죽지 않고, 있다고 부자 되지 않아. 너 나이에 사업하다 몇억씩 빚져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 많다. 그리고 엄마 말은 신경 쓰지 마.’
위로도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마 동생은 이런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몇 달 전 나는 어떤 모임에서 나의 부모에 대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중간 지점에서 같이 쓰는 사람들과 여러 번에 걸친 합평을 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어느 날 모두가 들어봤으면 좋겠다며 은유 작가의 글쓰기 상담소의 내용 중 타인을 묘사하는 법의 일부를 공유했다.
‘선악의 이분법에 갇히지 않기. 재연의 시도는 조심스럽기에 인물을 감정이 아닌 행위 중심으로 묘사한다. 다른 측면을 보려고 노력해서 그 사람을 진실하고 객관적으로 살려낸다. 나만 통통해지지 않는다’
- <오디오 클립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7화>
‘내 글에 등장하는 타인을 묘사할 때 주의할 점이 있나요? 중-
이 내용을 공유했던 그 사람은 몇 번이고 내 에세이에서 내가 부모님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내 글을 불편해하는지 그가 미워질 지경이었다.
지금도 나는 때때로 부모님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멈추지 못하지만, 내려놓고 비워내는 것을 연습하고 또 연습할 뿐이다. 나는 내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구와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속으로 소리친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라고 실제로 말하기는 힘들다.
사랑해야만 한다는 ‘정산인’으로써의 의무감 때문에 망설여진다.
자식 셋을 키우느라 없는 살림을 쪼개가며 팍팍하게 사셨던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에 죄책감이 든다.
그러나 진실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그러면 안된다는 윤리적인 마음의 틀에 대고 두고 보라는 듯이 한 문장으로 써본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금세 풀이 죽고 만다. 죄책감에 주눅이 든다.
한바탕 엄마에게 쏟아붓고 나니 방구석에 쪼그라져 있을 칠순의 작고 가녀린 엄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결혼하지 않은 자식 때문에 인생이 우울한 늙은 여인은 틀림없이 점심을 거르고 침대에 꼬부라져 누웠을 것이다. 내 채팅창을 보고 엄마는 어쩌면 조금 울었을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아버지 생신에는 용돈을 두둑이 드려야지.
엄마가 가을에 여행을 가니까 들기 편하고 예쁜 가방을 하나 사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