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그깟 국'
올해 마흔두 살이 된 나는 ‘요린이’다.
야근이 잦아 ‘특별한’ 맞벌이 부부라는 것을 구실로 시부모님의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살면서 아이도 맡기고 하루 세끼마저 빌어먹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될 무렵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근 13년 만에 시댁 어른들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나의 요리 역사는 시작되었다.
중년의 ‘예민한 요린이’는 ‘요린이 주제에’ 완벽을 기한다. 맛은 들쑥 날쑥인 편이지만 레시피의 1그람, 1 스쿱의 계량도 정확히 따라 하려 애쓴다. 근 20여 년의 회사 생활을 통해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치졸하다 싶을 만큼 심해진 탓도 있지만, 사실 이런 성향은 주로 나처럼 열등감이 많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나는 못 하기 때문에 열심히 따라 하기라도 해야 ‘평타’라도 칠 수 있다는 주의다.
어느 날 나는 여느 날처럼 6시 기상한다. 출근 준비를 하기까지 40분 남짓. 그 안에 등교 대신 온라인 수업 예정인 아들의 아침과 점심 두 끼를 준비해야 한다.
전날 소금에 절여 둔 고등어를 예열한 오븐에 서툴게 넣다가 고등어가 찢어진다. 1차로 작게 ‘에이씨’를 부른다. 멸치 다시다 육수를 올려 계량해둔 양파와 버섯, 두부를 넣은 뒤 미소 된장을 흘리고는 2차로 ‘에이씨’를 외친다. 동시에 옆 구에서 점심을 위한 새우를 볶다 다져 놓은 파프리카를 가스레인지 밖에 쏟고는 3차로 ‘에이씨, 아후 진짜!’, 또 외친다.
같은 시간에 일어난 반려인은 그동안 천천히 자기 몸을 씻고, 정성 들여 머리 손질을 하고, 꼼꼼히 로션을 바른다. 왠지 꼴같잖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지만 심술부리지 않기로 한다.
6시 45분, 5분 늦었다! 재빨리 세수하고 옷을 입는다. 7시에 집 앞의 마을버스를 타지 않으면 지각이다. 신발을 꺾어 신으며 뛰어나가다 외친다.
“아들한테 된장국 퍼 줘야 해!”
“어. 알았어!”
그는 분명히 대답한다.
7시 30분, 지하철에서 몽롱하게 졸다가 문득 깨어 그에게 톡을 보낸다.
‘아들한테 국 퍼줬어?’
정확히 13분 만에 그가 답을 한다.
‘안 퍼줬어.’
아들에게 바로 전화를 한다.
‘‘밥은 먹었어?”
“응.”
“안 먹었지?”
“응.”
“가스레인지에 국 퍼서 식탁 위 고등어랑 먹어.”
“응.”
“오늘 고생하고.”
“응.”
모든 말의 대답에 친절하고 한결같은 ‘응’이다.
전화를 끊었지만, 도무지 국을 안 먹었을 것 같다. 핸드폰에 코 박고 밥만 먹고 있을 아들을 상상한다.
다시 톡을 보낸다.
‘냉장고에 오징어 젓갈이랑 김치도 꺼내 먹고, 가스레인지 위 냄비 열어보면 된장국 있으니 꼭 먹어.’
‘ㅇㅇ’라는 대답, 역시나 한결같은 아들이다.
남편에게 다시 톡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저녁에 냉장고 안에 고기 꺼내서 구워 먹어.’
퇴근 후 최대한 빠르게 걸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7시 전에 집에 도착하게 되면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행복해지기도 하고, 7시 반에 학원에 가는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늘 나보다 일찍 퇴근하는 남편이 아들과 저녁을 차려 먹고 있다.
“왔어? 밥 먹었어?”
반려인은 내가 저녁을 먹고 올 시간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같은 말을 묻는다. 더구나, 내일 내가 다음 날이 건강검진 날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는 것과 공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또 잊었다. 낮부터 굶주린 나는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나 내일 건강검진이라고 말했었잖아.”
“내일이었던가?”
“그래, 나 2시 이후 금식이라고.”
“대장 내시경 하는데 점심 이후에 2끼나 굶는 게 말이 돼? 난 작년에 검사받기 전날에도 안 그랬어. 저녁 그냥 먹어.”
“아휴, 진짜. 기억을 못 해? 이거 병원에서 준 용지 좀 보고 얘기해.”
매사 틀린 사실을 두고도 본인이 맞다고 고집을 부리는 그가 또 짜증이 난다.
“엄마, 근데.” 그때 아들이 말한다.
“엄마, 나 아침에 엄마가 말한 국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못 먹었어.”
순간 나의 호르몬 파워가 급상승하며 짜증이 폭발한다.
“엄마가 전화도 하고 톡으로도 가스레인지 위에 있다고 말해 놨는데 왜 그걸 못 찾아.”
순식간에 엄청난 실망과 짜증과 분노가 오묘하게 뒤섞인 내 표정을 아들이 알아차리고 당황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잠시 멈칫하고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말한다.
“모르겠으면 엄마한테 전화를 다시 하지 그랬어.” 하며 아들의 머리를 한번 쓰담해 주는 그때,
“아흐 씨, 애가 국 못 찾을 수도 있지. 그깟 국 안 먹으면 좀 어때서! 애한테 몇 번을 얘기해!”
반려인이 갑자기 화를 내며 말한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다고... 왜 그렇게 말을 해?”
더 쏟아붓고 싶지만, 명치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한숨이 똬리를 틀며 목소리를 대신 막아버린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 눈치를 보는 착한 아들의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둘 다 입을 닫아 버린다.
나는 그 순간 ‘그깟 국’을 끓이기 위해 전날 밤 재료를 부지런히 손질하고 새벽에 기상한 내 모습을 떠올린다.
이사 온 뒤 병원에서 아들의 성장판 검사를 했을 때, ‘성장판이 한창 열렸으니 향후 2년간 정말 열심히 먹고 커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이제 내가 최고로 부지런히 차려 먹이겠다고 결심했던 게 생각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할머니가 차려주는 풍성한 집밥을 먹고 자란 아들이기에, 이제 그의 식단을 홀로 도맡게 된 요린이인 내가, 매일같이 레시피를 들여다보고 일주일의 식단을 짜고 장을 봤던 일과를 떠올린다.
2주에 한 번 시댁에 갈 때마다 아들과 손주의 얼굴을 번갈아 들여다보고는 안쓰러운 얼굴로, ‘왜 이렇게 꺼칠하냐. 쏙 들어갔냐.’라고 묻는 어머님이 떠오른다.
집에서는 잘 먹지 않는 아들이 시댁에서는 끼니마다 가득 먹고 식후 곧바로 내어주는 간식도 착실하게 아구 아구 먹던 모습을 연상한다. ‘아이고 이렇게 잘 먹고 좋아하는데…’ 하며 어머님이 아들의 얼굴을 쓸어주는 것도, 아들이 자신보다 아주 작아진 할머니에게 한껏 기대어 편안하게 배를 두드리는 모습도 떠오른다.
내 기억 속에 다소 과장되었을 에피소드들이 끝이 없는 시리즈로 이어지고, 곧 그것은 말 대신 토해내는 한숨으로 변하며 나를 둘러싸기 시작한다.
샤워하러 들어가 수도를 틀고, 물이 쏟아짐과 동시에 서러운 눈물이 난다.
한참을 훌쩍거리고 코를 푼 뒤 옷을 입고 나와 말없이 설거지 앞에 선다. 컵을 닦고, 기름 묻은 그릇을 닦고, 쉬지 않도록 아침에 먹지 못한 국을 다시 끓인다.
말이 없는 내 풍경 안에 반려인이 슬그머니 들어선다.
“아들, 이리 와 봐. 엄마한테 사과해. 엄마가 정성 들여 끓였는데 못 찾고 안 먹었지.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해.”
나는 더 화가 난다. 분노라는 것이 폭발한다.
“왜 아들이 나한테 사과해! 내가 아침에 너한테 아들 국 퍼주라고 말해주고 갔어, 안 갔어? 왜 다들 내 말을 무시하는 거야! 네가 60% 잘못이고 네 아들이 40% 잘못이야. 알아?”
거의 울부짖듯이 포효한다. ‘그깟 국’ 한 마디 때문에 나는 내 서투른 요리법에 대한 자괴감과, 무시를 당했다는 서러움과, 주부의 살림살이라는 수고와 억울함이 폭발한다.
“흐흐.... 그나마 다행이네, 내가 60%라서…. 내 잘못이 90%는 되는 줄 알았지.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2년 전 내가 우울증으로 쓰러지고 난 뒤부터 그는 전에는 잘하지 못했던 사과를 곧잘 하기 시작했다. 까칠하고 자존심이 센 나의 반려인은 좀처럼 타당한 명분과 합리적 이유 없이 사과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상황을 딱히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 16년간 반복해 교육했던 예의 사과 3종 세트를 할 줄 안다. ‘미안해,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물론 영혼이 없는 말투이지만, 그 정성이 갸륵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아들을 학원에 보낸 뒤 방에 들어와 이 글을 쓰고 있자니 괜스레 울컥하며 눈물이 다시 차오른다.
예민한 자의 ‘그깟 국’에 대한 기억은 또 얼마나 오래갈까. 또 어떤 일에 연상으로 붙어 떠오르는 기억이 될지. 이런 내가 한심하다. 예민한 게 아니라 성격이 이상한 탓이라며 자책한다.
까탈 부리지 말고 잊자. 잊어.
상황에 과도한 감정을 엮어내지 말자고 또 결심하지만, 내일 아침 두부가 불어 터진 국을 보고 있으면 또 눈물이 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