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자의 기억법

인생 팥죽

by 배운

삶에 기억이란 것이 존재했던 순간부터 그 녀석은 이름 대신‘놀부’로 불렸다.


뚱그러니 나온 올챙이 배에 터질 것 같은 흙투배기 야구복을 입고서는, 두 볼이 가마 발갛게 될 때까지 땅땅하고 짧은 다리로 점들 골목 구석구석을 발록 발록 쏘다니고는 했다. 그런 녀석이 들이 좋기만 한 할미가 방구석 묵은 통 속에 눅눅한 조청 과자를 꺼내어 몰래 주면, 내게 있는 힘껏 혀를 뽑아서 메롱메롱하고는, 미끈한 조청이 눌어붙어 꺼멍 손가락이 되도록 양손에 꼭꼭 쥐고 다녔다.


그 녀석은 가만가만 잘 놀다 가도 문득 머리 꽁지 어딘가로부터 시작된 심술이 스멀스멀 소가지로 뻗쳐 들 때면, 삽시간에 동네 똥개처럼 사납게 덤벼들어 내 배를 부여잡고 물어뜯어 버리는 괴상한 버릇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살점이 뜯어져 나간 쓰라린 아픔보다 수치스럽고 분한 마음에 거의 까무러쳐 목구멍에 피가 나도록 땅을 굴러내며 울고는 했다. 두 살 어린 다리 짧은 녀석이 나보다 힘센 것도 싫은데, 가슴팍이 저릴 정도로 약이 올라 이 자국이 선명하게 나버린 배가 아닌 심장을 부여잡고 나뒹굴었다.


엄마는 내 배에 손바닥만 한 거즈를 붙여 주며, ‘개새끼 잡히기만 해 봐라. 후두려 패 줄라니까.’하고 큰소리를 내며 내 울음을 재워 주었지만, 한 번도 그 녀석이 맞는 꼴을 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은 내가 근 30년이 훌쩍 지난 그때의 일을 엄마에게 말했을 때, 전혀 기억에 없다며 ‘그 애가 네 배를 왜 물어뜯었겠냐.’라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다. 엄마가 일부러 기억에서 지워낸 것인지, 혹은 세월 속에 스스로 기억이 물러난 것인지, 괘이 수상쩍고 소름 끼쳐 진지하게 병원을 가보지 않겠냐고 물은 적도 있다.


아무튼, 그 시절에는 매일반으로 남동생이 얼마나 고까운지 ‘에휴. 저 날름대는 혀를 목에 칭칭 감아버렸으면, 참말로. 저 똥만 찬 배때기를 한 번 힘껏 차 주었으면,’했지만, 그 녀석은 눈으로도 업고 다니는 할미와 엄마를 열두 병풍 치고는 항시 욜랑거리는 것이었다.


엄마의 말로는 원체 예민을 떨고 유난스러웠던 내 기질이 모든 문제를 크게 일으킨다고는 했지만, 그러한 기질로 인해 몇 가지 기억들은 사진과 필름처럼 또렷이 저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올근 볼 근 시비하던 녀석과의 기억도 삶의 한 자락에 얽기 설기 매여 남아 있다.


그중 해가 쨍하니 여름 같은 더위가 서둘러 온 봄날의 한 날이 기억 속에 솟아올라있다.


빨간 벽돌의 2층 다세대 주택에 이사한 다음이니까, 학교에 일찍 들어간 나와 동생은 각각 국민학교 1학년, 5살이었을 것이다. 그날은 웬일인지 엄마가 남동생이 유치원에서 오면 문을 열어주라고 하며, 나를 홀로 남겨두고 서둘러 시장에 나갔다. 고요한 한낮에 홀로 마루에 동그마니 앉아있던 나는, 거실을 넘보는 해의 뜨끈함을 느끼며 처음으로 일렁거리는 이상하고도 침침한 울적한 기분 속에 천천히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그때 마침 서먹하고 불편한 이 층 사는 언니가 계단에서 쭈물거리는 나를 발견하고 같이 놀자며 불렀다.

언니는 얼굴이며 몸이 다 정말로 똥그랬는데, 집에서 피아노 경연대회에서나 입을 법한 이상하고 화려한 분홍색 비로도 원피스를 입고서는 자기 머리통 만한 왕리본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고개를 아래로 대롱대롱 쭉 내밀며 올라오라 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마법사의 유혹에 빠지는 오즈라는 상상을 하며 이 층 계단을 통해 신비의 세계로 쪼르르 올라갔다. 그때서야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조용한 공기의 어색함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언니는 리듬체조를 보여준다며 리본을 들고 꼬불꼬불 제자리를 돌며 춤을 추었는데, 그 당시 리듬체조를 배운다는 자체가 너무 신기해서 나의 눈은 꼬부라져 버렸다. 게다가 세트로 몇십 권이나 되는 세계 어린이 명작동화가 있었는데, 그 당시 내가 외국 그림이라고 부르던 서양화가 엄청나게 멋있게 그려져 있어서, 나는 책들 속에 영혼을 빼앗겨 세상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정신없이 책을 읽는 나와 노는 것이 심심해진 언니는 내게 어서 먹고 가라며 팥죽 한 그릇을 내어줬는데, 내 생각에 나는 그런 것을 그날 처음 먹어본 것 같다.

눅실 눅실한 흰떡이 팥죽 위에 눈꽃처럼 피어 있는데, 그것이 어찌나 입천장에 파닥파닥 붙어 대던지 한 입 밀어 넣고 입천장을 훑으며 먹는 맛이 너무나 달보드레하여, 나는‘이상한 나라의 폴’에 나오는 찌찌가 정지시킨 시간 속에 갇혀 버리는 것만 같았다.


복고랑 하여 느그적느그적 우리 집으로 내려오니, 거실에 내리쬐던 밝은 햇살은 빨갛고 노랗고 또는 거뭇한 노을의 색으로 고요한 집을 물들이고 있었다. 퍼뜩 내가 왜 아직 혼자인가 싶은 생각에 심장이 몽그라지는 듯 정신이 오득 해져서, 현관을 박차고 마당에 들어섰다.

섬뜩하고 아득하나 찜찜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 집에 다시 들어가려는 찰나,


‘아니야, 아니야, 누나 가지 마 아아아… 나 여기 여기이이이….’


쉬어 메이는 목소리에 담장 옆을 바라보았을 때, 그 뚱뚱이 놀부 녀석이 제 키보다 높은 벽돌 담벼락에 호박 덩이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꺼억 꺼억 멱을 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통이 땀 소나기에 젖어 삿갓을 뒤집어쓴 마냥 하고, 서러운 누렇고 까만 땟눈물이 얼굴에 홍수가 되어 추적추적 꼴사납게 내리고 있었다.

내 발등은 꼬부라지고 내 눈은 황소만 해 져서, 얼른 문을 땄다.


“어서 들어와. 무르팍이랑 신발은 왜 이렇게 까졌어….”


“응 누나, 담벼락 타려고 벽돌 날라서 올라가다 자 꼬만 넘어져서 그렇지. 근데 누나 이제 살았다. 에헤헤.”

늘 도끼 같던 놀부 눈알이 곰생이처럼 쳐져서 떼꾸정이 얼굴을 하고 헤 벌레 웃는다. 매일매일 콕 쥐어박고 싶던 녀석, 하루만 없어라 한 녀석이 그깟 문 따줬다고 살았다며 살살이 웃는다.


“배고프지, 누나가 팥죽 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 봐…”

무슨 염치가 났던지 이층 언니에게 다시 올라가 내가 먹던 팥죽 좀 달라고 부탁해서 얻어온다.


“우리 동생아 어여 먹어. 맛있어?”

“응. 누나 대따 대따 맛있어.”

팥죽이 코 죽이 되도록 까맣고 토실한 손아귀에 팥죽 그릇을 부여잡고 허구 허구 먹는다.


“그게 내가…. 미안 타고…."

“응 누나 뭘?”

“아니야. 근데 엄마한테 말하지 마? 꼭 말하지 마?”

“응 뭐를?”

“암튼 말하지 마…. 응?”

“알았어 누나.”

누런 코와 까만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로 해처럼 웃는다.


더운 햇살 아래 팥죽 같은 땀을 뒤집어쓴 우리 오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던가 보다. 너울너울 가라앉는 노을과 같은 엄마 목소리가 가만가만 우리를 깨운다. 놀부와 나의 나른하니 발개진 볼을 보고 엄마는 웃으며 사진기를 꺼내 우리를 찍는다.

오후에 안방으로 스며들던 나른하고 따스한 햇볕 속에서, 어깨동무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내며 이히히, 까르르 하는 모습이 내게 말간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느덧 마흔 줄에 닿은 동생의 어깨는 그날의 담벼락보다 훨씬 넓고 높아졌지만, 이제 인생이라는 무겁고 두터운 담벼락을 붙들고 매달려 있는 녀석의 손등을 볼 때마다, 괜스레 어린 그 날의 팥죽 한 그릇에 스민 미안함과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에게 오늘만은 오후 한나절의 따스한 낮잠 한 자락과 같은 쉼이 편안하게 닿는 날이 되기를 가만가만 바라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예민한 자의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