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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Jun 26. 2024

암투병은 처음이라

비교적 조기에 암을 발견하게 된 아빠를 두고 사람들은 천운 이란 표현을 썼다. 가벼운 교통사고가 없었다면 암이라는 존재가 그의 몸에서 더 깊고 오래 자라났을 것이다. 전립선암의 경우 다른 암에 비해 예후도 좋고 생존확률도 높다는 의견이 많았다. 빠르고 정확하게 암조직을 떼어내는 것을 목표로 병원을 검색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아빠는 암환자라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을 하고서 수술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꽤 긴 시간의 로봇 수술을 통해 몸속에 자리 잡은 녀석들을 제거해 냈다.

  



살면서 병원에 입원한 아빠의 병간호를 하게 될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수술 후 삼일이 흐른 시간이라 어느 정도 안정된 모습의 아빠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 아빠가 누군데 그깟 수술 하나에 환자처럼 있을 리 없지’ 며칠 간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호전 속도가 빨랐다. 주말을 함께 4인실 병실에서 보내게 된 아빠와 나는 유럽 어딘가의 다인실 열차를 타고 낯선 행선지를 향해 떠나는 사람들 마냥 불편하고 시끄러운 병실의 환경을 견뎌내고 있었다. 다음 여행지를 탐색하는 사람처럼 아빠는 노트북으로 구글 맵과 로드뷰를 켜고 종일 지도를 서칭하고 있었다.  

“무슨 지도를 그렇게 종일 살피는 거야?” 

“어~ 퇴원하면 어디 갈지, 어느 동네가 살기 괜찮을지 그냥 한번 찾아보는 거야” 

“그래, 아빠 퇴원하면 그놈에 택시 그만 운행하고 제발 발 따라 길 따라 여유롭게 놀러 좀 다녀” 

퇴직 후 쉬지 않고 바로 개인택시 운행을 하게 된 것이 병의 원인이라 생각하던 차였다. 해보지 않은 일을 하니 스트레스가 심했고 그로 인해 암이라는 녀석이 아빠몸에 자리 잡은 것이라고. 

인생의 큰 경험을 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아빠는 생에 첫 수술이 남긴, 자신의 복부에 뚫린 구멍 자국을 보여주며  “영광의 상처야, 꺼꾸리 자세로 머리를 바닥으로 매달고 그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고” 

라며 수술과정을 영웅담 마냥 말할 정도로 홀가분해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의 몸에 들어온 암이라는 존재를 그저 방역을 통해 퇴치하면 되는 가벼운 벌레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다행히 수술 후 경과도 좋았고 수치도 안정선을 유지해 주었다. 장기의 일부를 떼어 낸 것이 아니다 보니 수술 후유증도 크지 않았다. 조금의 불편감은 있었지만 생활하는데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겉모습이 예전과 다름없으니 보이지 않는 몸 안의 것들에 마음을 쓰는 일도 어느새 무뎌져 갔다. 

그는 다시 술과 담배를 즐기게 되었고, 푸짐히 차려진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먹으면 좋은 거라는 합리화로 기존의 습관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암투병이 처음이던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제 주인을 무척이나 닮아 있던 암이라는 세포는 그렇게 아빠의 몸 안에서 오랜 시간 인내하며 뚝심 있게 자신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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