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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Jul 01. 2024

암을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아빠 몸 안의 타이머가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째깍째깍 빠르게 숫자가 떨어지며 0을 향해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만성췌장염이라는 새로운 질병은 어쩌면 그의 몸속 장기들이 보내는 신호였을 것이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그러니 이제 우리의 신호를 무시하지 말라고.


그러나 몸의 주인은 신호를 받고도 태연하기만 했다. 매일 같은 시간 운행하는 택시에 몸을 싣고 도로 위에 올라섰다. 목적지를 설정하지 못 한채 흘러가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불특정 다수의 목적지에 동행을 했다. 묵묵히 입을 굳게 닫은 채 운전을 하던 아빠의 뒷모습이 그의 삶과 같이 느껴져 마음이 시리곤 했다. 코로나 시기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던 성실함은 그의 몸속 세포들에게도 성실함을 요하듯 시간에 맞추어 제 모습을 들어내게 만들었다. 3개월 전 종합 검진에서 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던 아빠의 몸에 이상 통증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분 나쁜 통증에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아야만 했다.  


“장기 전체로 암이 전이되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  

가족 면담을 요청한 주치의가 우리에게 보여준 화면 속 아빠의 몸 안은 온통 까맣게 변해 있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믿어지지 않아 몇 번이고 숨을 들이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떠야만 했다.  


 이후 전해 들은 이야기론 이미 몇 개월 전부터 피검사에선 암수치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고, 항암을 권하는 병원 측의 의견을 아빠 스스로 피해 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암을 할 정도로 큰 변화가 아니라고,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 달라진 것들이 전혀 없으니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빠르고 속절없이 암세포가 장기 이곳저곳으로 퍼질 거라 생각지 못한 것이다. 골든타임의 사이렌은 여러 차례 아빠에게 울렸지만 환자 스스로 인정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눈앞에 믿기지 않는 결과를 보고서야 우리가 암세포에 너무도 무지하고 허술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후회와 자책, 막막함 같은 감정들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번져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인정을 해야만 했다.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는 시한부 환자와 간병보호자로 아빠 몸의 암과 대치해야 한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다부진 자세로 투병 기간을 견뎌낼 것이라고 포기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때부터였던가? 그 누구도 먼저 울지 않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가족들의 암세포에 대처하는 자세가 약속이나 한 듯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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