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조 OR 철근콘크리트
이 집의 구조는 처음부터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염두에 두었다.
사모님은 투바이포(2×4) 공법이라고 불리는 경량목구조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경량목구조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가 1990년대 초반이었고 역사가 길지 않아 시행착오가 많은 공법이었다.
도입 초기에는 전문가보다 어깨너머 배운 목수들에 의해 지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다 보니 경량목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하자가 빈번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수입된 공법이다 보니 토착화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2000년대에 들어와 전원주택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전의 전원주택은 부유한 사람이 즐길 만한 자연환경이 있는 곳에 별장을 짓고 가끔 도시에서 지친 육신을 쉬게 하려는 목적이 강했다면, 이때는 웰빙 트랜드에 편승해서 건강한 자연의 삶을 꿈꾸는 이들이 삶의 터전을 통째로 도시 근처의 전원으로 옮겨 오는 방식이었다.
가족의 생활을 다 담아야 하니 집의 면적이 커졌고, 그들의 낭만적인 삶이 궁금해 찾아오는 손님을 위한 공간까지 담다 보니 면적은 더 커졌다. 아파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복층의 거실, 높은 천정고, 다락방 등을 넣다 보니 전원주택은 기본 2층 이상이 되었다. 넓은 면적의 2층 집이 이때 전원주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다락까지 있는 2층 규모의 큰 집을 지으려니 시공비가 문제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선택한 것이 경량목구조였다. 철근콘크리트보다 공사 기간이 짧아 관리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고, 공정이 비교적 단순해 인건비 등이 절약되는 측면이 있어서 공사비가 철근콘크리트 구조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목구조를 계산하는 구조전문가도 없을 때라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적용하던 방식을 그대로 들여와 시공했는데, 우리의 생활방식과 풍토를 고려하지 못한 시공법이라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 캐나다와 우리나라가 다른 점은 기후적으로는 비가 많이 오는 다습한 환경이라는 것이고, 생활방식 면에서는 바닥 난방을 한다는 것이다.
‘나무로 만든 집은 숨을 쉰다’고 한다. 실내가 습할 때는 나무가 습기를 머금고 건조할 때는 습기를 내놓는다. 이렇게 숨을 쉬게 하려면 바람을 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내의 습기를 외부로 배출하려면 바람이 통하는 통기층이 필요한데, 이 통기층을 만드는 공정이 레인스크린이다.
보통은 투습방습지와 마감재 사이를 띄워(15㎜ 이상) 레인스크린을 만드는데, 초기 목조주택에서는 이를 적용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레인스크린을 설치하지 않으면 결로나 생활습기가 배출되지 않고 나무에 쌓여 시간이 지나면 썩어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바닥 난방은 보통 습식 공사를 전제로 한다. 온수가 흐르는 파이프를 바닥에 깔고 모르타르를 덮어 바닥 난방을 구성하는데, 모르타르는 시멘트와 모래, 물을 섞어 만든다. 이렇듯 물이 사용되는 공사를 습식공사라 한다.
바닥 난방을 구성하는 방바닥 통미장은 시멘트와 모래로 구성된 바닥이라 나무로 만든 바닥보다 더 무겁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목재 바닥에서 적용하는 장선의 규격으로는 2층 바닥의 하중을 감당하기에 버겁다.
무거운 바닥에 적합한 부재의 규격, 적용 방식이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이미 지어진 많은 목조주택에서 사용자들은 다양한 하자를 경험하며, 목조주택에 대한 불신을 키워온 것이다. 불신과 회의가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경고처럼 전해지고 목조주택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멍에를 지게 되었다. 새로운 것이 적용될 때 겪게 되는 시행착오는 어떻게 보면 피해가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이 출시될 때 가장 먼저 사용하려는 이들을 ‘얼리어답터’라고 한다. 먼저 나서서 매를 맞으려는 이들, 얼리어답터는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드백을 통해 제품이 개선되고 사용자 경험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리어답터가 새로운 제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해당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마케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얼리어답터가 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알기에 이들을 위해 특별 할인을 해주거나 때로는 무상으로 제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얼리어답터 또한 초기 제품이 가진 결함이나 사용상의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매를 강행한다. 새로운 경험을 즐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동기가 여러 문제와 위험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집이 풍비박산이 나거나 재산을 거덜 내는 정도는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소비일 것이다.
그런데 내 집 짓기는 다르다.
보통 사람은 평생에 한 번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그리고 가진 모든 것을 끌어오고 은행의 힘까지 빌려와야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새롭고 좋은 것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선뜻 취하기 어렵다. 사용자의 검증이 어느 정도 끝나고 움직이는 ‘레이트어답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목조주택이 도입 초기부터 사용자의 선택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나 캐나다의 오랜 목조주택의 경험을 통해 이미 검증이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철근콘크리트보다 비교적 저렴한 건축비용이 한몫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얼리어답터가 된 건축주들이 공유한 집의 사용 후기는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컸고 결과적으로는 마케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지금의 목조주택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간 학계나 목조건축협회를 통해 지속적인 기술 발전을 이루었고, 국내 환경에 적합한 목구조 방식으로 개선되었으며, 이를 적용해 시공할 수 있는 전문적인 시공업체도 많아졌다.
“목조주택은 춥고 문이나 창도 삐걱거리고 잘 닫히지도 않고 결로도 많고 벌레도 많고……. 하여간 사람 살 데가 아니야”라는 천대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구조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제대로 지을 때라는 단서가 붙지만 말이다.
이렇게 목구조에 대해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즈음 해서 여주 집의 구조 방식이 철근콘크리트보다 목구조가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변심한 첫 번째 이유는 세상사가 늘 그렇듯 돈이었다. 여주 집은 처마가 있는 높고 넓은 박공지붕으로 계획되었다. 물론 안마당 부분은 비워 놓았지만, 단층치고는 지붕의 규모가 상당하다. 이런 높고 넓은 경사 지붕을 철근콘크리트로 형성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으며, 합리적이지도 않다.
철근콘크리트가 가진 장점 중 하나가 평평한 지붕을 필요한 만큼 넓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 시대에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콘크리트라는 재료는 돌이나 나무처럼 크기에 제한적이지 않고, 연속적이며, 내수성이 있어 넓고 평평한 지붕을 형성하더라도 방수에 대응하기 쉽다. 평평한 지붕을 계획했다면 콘크리트보다 더 좋은 구조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경사 지붕은 다르다. 경사면에 흐르는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것에는 돈과 노력이 많이 든다. 또 무겁기에 구조적인 부담도 크다. 작은 집이 비싸게 들인 무겁고 커다란 지붕을 이고 사는 것이 가혹한 업보처럼 다가왔고 고졸함과도 맞지 않는 몸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심한 두 번째 이유는, 작은 집이지만 조금은 더 넓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철근콘크리트구조의 집은 구조체와는 별도로 마감을 위한 바탕 면이 따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 말은 철근콘크리트는 구조체일 뿐 내부 마감을 위한 석고보드나 합판을 바로 부착하는 바탕 면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흔히 다루끼(각재)라고 불리는 목재 틀을 콘크리트 면에 붙여 바탕 면을 형성하고 그 위에 석고보드나 합판을 부착한다.
그런데 목구조는 구조체 자체가 마감을 위한 바탕 면으로 사용된다. 구조체의 치수 정합성이 높아 마감의 품질 또한 높다. 구조체가 바탕 면이 되므로 공정이 줄어 자재비나 인건비도 절감할 수 있다. 그리고 벽체의 두께를 철근콘크리트구조의 집보다 얇게 가져갈 수 있다. 건축법에서 적용하는 같은 면적이라도 실제 구현된 공간은 목구조 방식이 조금 더 커진다.
좀 더 정밀한 시공과 좀 더 넓은 면적의 공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변심의 두 번째 이유였다.
목구조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 두 분은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목구조에 대한 오해를 풀고 작은 여주 집에서 화해를 이룬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