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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Sep 13. 2022

중화동 다가구주택 '골목집'

중랑천이 흐르고 동부간선도로변의 시설녹지가 있는 중랑천로는 여유롭고 한가해 보였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차량 통행량도 많지 않아 어슬렁거리며 산책해도 좋을 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골목으로 접어들면 상황은 달라진다. 

밀도가 높은 단독, 다가구가 블록을 꽉 채우고 있고 필지 단위가 작아 변변한 녹도 없는 상황에 길은 차와 보행자가 서로 살피며 다녀야 할 어수선하고 복잡한 모습이 펼쳐진다. 

낡고 퇴락한 집들이 좁은 골목에 마주하고 있는 모습은 얼마 전 tv에서 봤던 ‘응답하라 1988’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시간을 거스른 듯한 도시풍경을 자아내는 이유는 이곳이 얼마 전까지 ‘재정비촉진지구’로 묶여 있던 탓이 클 것이다. 



30~40평 규모의 규격화된 필지가 블록화 되어 있는 모습은 동네가 오래된 계획도시임을 말해준다. 

단독주택지로 계획된 이 동네가 세월을 보내며 단독주택에서 다가구로 몸집을 불려가다 보니 동네 풍경은 처음의 아기자기한 모습과 달라졌을 터이고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며, ‘응답하라1988‘ 쌍문동의 마지막 모습처럼 언젠간 떠나야할 동네로 인식되니 집은 더 나이를 빨리 먹고 늙어갔을 것이다.



재정비촉진지구가 해제된 이후,

대규모 재개발이 아닌 각자도생이 시작되고 오래지 않아 이 동네는 꿈틀대기 시작했다.

각자가 욕망하는 최대 용적과 집의 개수로 입에 맞지 않는 틀니를 억지로 끼워 넣듯 그렇게 동네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중이다. 

부디 새로 채워진 틀니가 입을 찌르지 않게 되길 바라지만 서로가 더 많이, 더 크게를 경쟁하는 상황에선 상처 난 입(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나마 다행은 중랑구의 자세다. 

이 동네가 살기 좋은 동네로 거듭나야 한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다.

그래서 복지부동이기 보단 좋은 것을 찾고 만들기 위한 모험을 함께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 골목집을 진행하며, 공무원의 적극적 행정에 묘한 감동까지 느꼈을 정도니까.



30대 후반의 건축주는 이 동네 큰길(그래봐야 6m 도로이지만)에서 한켠 물러난 32평의 작은 땅을 구입했다. 30대의 직장인이 서울에 토지를 구입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큰 부담이었을 터이고 본인의 집만 짓고 살 수 있는 조건은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30평 남짓의 땅에 지어야 할 다가구주택.

과거 이 협소한 땅들에 지어진 다가구주택이 어떻게 이 동네의 풍경을 망치고 있는지 실증된 상황에서 다시금 그에 일조하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는 부담이 크게 다가왔다. 



우린 집을 가급적 길에서 물려 앉히기로 했다. 

길과 집의 경계를 없애고 길을 집의 안 깊숙한 곳까지 잇고 각각의 집에 다다르게 하면 하나의 집이 아닌 여러 집이 모여 사는 동네의 모습을 담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달동네처럼 계단으로 이어진 골목을 오르다보면 내 집이 있고 옆집을 만나는 그런 풍경을 상상했다.


주차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고 오르다보면 내 집을 만난다. 



각각 집의 출입은 골목에서 근생 앞을 지나 안쪽 끝의 계단을 통해 오르며 연결된다.

2층은 건축주의 집이며, 모퉁이를 돌아 오르면 3층은 1.5룸 2가구가 있다. 다시 돌아 오르면 4층의 마당에 이르게 되고 그 마당은 각각 다락이 있는 2가구의  앞마당이 된다. 골목은 집의 바깥쪽을 싸고돌아 오르게 되는데 모퉁이를 돌 때 마다 보이는 풍경의 달라짐이 4층까지 오르는 수고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랐다. 


안쪽 짙은 파란 문을 통해 집의 골목으로 이어진다. 
2층의 주인세대
3층의 임대세대


4층 마당에서 진입하는 임대세대


집의 바깥쪽으로 붙어 있는 계단과 통로 덕분에 각각의 집은 인접 대지의 집들과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고 창을 냄에 있어서도 시선이 맞닥뜨리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도 긍정적이었다. 


외부계단 때문에 자연스레 이격되어 설치된 창은 인접건물과 맞닥뜨리지 않아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유리
2층 주인세대 거실의 일부는 계단 하부 공간을 활용해서 높은 천정을 가진다. 
2층 주인세대의 주방과 거실
3층 임대세대.  시선이 열린 곳에 세로로 긴창을 설치했다.
4층 임대세대. 다락을 방으로 사용하고 하부는 주방과 거실, 화장실이 위치한다.
4층 다락


 ‘골목집’을 계획하며, 자주 흥얼거렸던 멜로디가 있다. 

엘튼존의 ‘goodbye yellow brick road’. 도로시가 세명의 동반자와 에메랄드 시를 향해 걷던 노란 벽돌길, 그들이 얻고자 했던 모든 것은 에메랄드 시가 아닌 결국 내 안에 있었다는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처럼, 작은 땅에 흔한 엘리베이터 조차 없는 수고스러움 많은 소박한 집이지만 사는 이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이 발견되는 그런 집이기를 기대했다. 

 



대지위치 : 서울 중랑구 중화동 328-6

대지면적 : 108.4 M2

용 도 : 다가구주택(5가구), 근린생활시설(사무실)

건축면적 : 64.8 M2

건 폐 율 : 59.78 %

연 면 적 : 197.79 M2

용 적 률 : 182.46 %

규 모 : 지상 4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 구조

 외부마감 : STO, 칼라강판 

창 호 : 3중유리 PVC 시스템 창호 

바 닥 : 강마루 

설 계 : 투닷건축사사무소 조병규(소장), 모승민(소장)

시 공 사 : 우리마을 A&C 

사 진 : 최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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