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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Sep 08. 2022

문호리 상가주택 '기연가'

건축주와의 인연은 특별했다.

우린 첫 만남에서 충분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렸다.

상담 시간을 깜빡하고 낮부터 술을 먹고 있었다.

다른 건축주가 계약 기념으로 청한 자리에 빠질 수 없었다는 것은 핑계일 것이고 술이면 환장하는 나는 화창한 한낮에 술로 흠뻑 젖었다.

내가 횡설수설하며 얘기하는 동안, 나를 보필하겠다고 따라온 천팀장은 옆에서 졸고 있었다.

얼마나 가관이었을까.

난 자책하며 일의 기대를 접었었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건축주는 다시금 우리를 찾아 주었다. 

건축주는 우리와는 다른 기억으로 그날의 기이했던 인연을 추억했다. 

다른 건축주와 거나하게 마신 낮술은 건축주와의 친밀감으로, 그 와중에 상담을 결행한 것은 약속을 지키려 애쓴 모습으로. 

그냥 좋은 모습만 보려 애쓴 덕분일 것이리라.

그렇게 '기연가'는 우리에게 왔다.


낡은 단층집이 있는 대지. 도로보다 70cm 정도 낮아 성토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종 지방도에 접한 대지는 도로에 면한 곳은 좁고, 깊어질수록 넓어지는 특이한 형상을 가졌다. 접도한 좁은 면은 상가의 입지로는 큰 약점이었다.

다행히 보행자 위주의 접근 보다는 차량의 접근이 많은 지역이라 차량의 빠른 이동 속도에서 맞닥뜨리는 다채로운 형상을 상상했다. 

양 방향의 이동에서 보이는 서로 다른 입면의 모습, 대지의 안쪽 깊은 곳까지 이어지는 유연한 곡면으로 다르게 읽히는 건물의 볼륨이 기이한 인상을 만들고 호기심을 불러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이 집은 상가주택이다.

주택보다 상가 면적이 크지만 건축주가 거주할 곳이니 이 곳은 그들에겐 집이다.  


보통 우리는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낯선 집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

집이 거기에 사는 가족에게만 ‘장소’의 의미를 가지는 까닭일 것이다. 


상가는 낯선 이들이 더 많이 찾아줘야 존재 가치가 증명된다. 

그렇기에 태생적으로 상가주택은 그 구성이 이율배반적이다. 


우리는 이 집이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 ‘기연가 미연가(긴가민가)’ 하길 바랐다.

집인지 아닌지의 모호함이 이 곳을 찾는 이의 경계심을 풀어주길 기대했다.


그렇다고 집을 희생(?)시키는 것은 원치 않았다.

4층의 집은 안주인의 바람대로 마당을 두었다. 

중정은 자연스럽게 채의 분리를 가져와 내밀한 침실의 영역과 거실, 주방으로 나뉘어 안채와 사랑채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침실과 이어진 뒷마당은 오롯이 안주인의 장소로 텃밭과 좋아하는 꽃과 나무로 채워나갈 여지도 두었다. 

하지만 이런 마당과 채의 분리는 밖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기연가 미연가’를 위해 주택은 전체 건물의 모습에  통일되어 보여 진다.


4층 건축주 세대의 내밀한 중정


북한강을 조망하는 4층 뒷마당


뒷마당과 이어진 침실


‘기연’(기이한 인연)은 ‘비장소(지방도)’에서 ‘장소(기연가)’로 들어가는 비밀번호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연이 깊어 목걸이 반쪽을 나누는 할부로 그 인연의 끈을 놓지 않듯이 이 집이 할부되어 서로 관계없는 이들이 묶이는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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