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우발적 살해

by 보통의 건축가

내 삶이 기억되기 시작한 첫 세계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그때는 삭막하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세상은 원래 다 그런 곳인 줄 알았으니까.

사람들은 수직으로 겹쳐있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집 아래에 집이 있고 집 위에 또 집이 있었다. 어디가 끝인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언젠가 나무 위에 있던 작은 벌집을 가지고 논 적이 있었다. 땅으로 떨어진 벌집에서 많은 벌들이 기어 나왔고 집을 공격한 나에게 덤벼들었다. 당황한 나도 앞발로 벌들을 쫒으며, 벌집을 밟아 부수었는데 그때 속의 집 모양을 볼 수 있었다. 수백 개의 작은 방들이 옆으로, 아래위로 빼곡히 붙어 있었다. 이 작은 덩어리 안에 그렇게 많은 벌들이 살 수 있는 이유를 그때 알았다. 사람들이 사는 집은 벌들이 사는 집과 닮아 있었다. 집만 닮은 것이 아니었다.

생활하는 모습도 어딘가 비슷했다. 일단은 엄청 부지런해 보였다. 작은 벌들은 보이지도 않는 빠른 날개 짓으로 웅웅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벌집을 드나들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쉬지도 않았다. 먹이를 구해오나 싶었지만 뭔가를 들고 오는 것은 보지 못했다. ‘저렇게 분주히 움직이면, 더 빨리 배가 고플 텐데’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사람도 비슷했다.

아침이면, 층층이 쌓인 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일 먼저 어른들이 나왔고 조금 지나면 꼬마들이 재잘대며 나왔다. 어른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지 않았다. 피곤한 얼굴이거나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이 대부분이었는데, 밤새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지는 표정이었다. 저녁 무렵이면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아침과는 다른 게 조금씩 오는 시간이 달랐다. 그런데, 벌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빈손이었다. 먹이를 구해오는데 실패한 사람들의 얼굴은 피곤에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사냥 능력이 현저히 낮은 집단이 벌이나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사는 것일까?

엄청난 미스터리인 것이 난 그때 혼자였음에도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전쟁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타고 이동하는 자동차라는 것이 벌집 같은 집 울타리 안을 거의 다 채우고 있어서 사냥할 것들이 거의 없었고 난 그저 인심 좋은 사람들이 주는 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못 먹을 때가 많았다. 그 밥을 노리고 있던 고양이가 나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인데, 그 놈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고 있으면 그날은 굶는 날이었다. 덩치도 크고 성질도 더러워서 괜히 주변에 얼쩡거리다가는 몇 대 얻어맞을 것이 뻔하기에 지례 포기하고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놈들은 교태도 부릴 줄 알아서 사람들이 밥을 주면 그 앞에 발라당 눕거나 머리를 비벼댔다. 참 자존심도 없는 놈들이었다. 아니, 자존심이 없다기보다 겁이 없다고 해야 하나? 난 사람이 무서워 절대 곁에 가는 법이 없었다. 내 엄마의 유언도 절대 사람 곁에 가지 마라였다. 사람보다 위험하고 음험한 동물은 없다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었다.


벌집을 지키고 있는 제복을 입은 사내를 보면, 엄마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희끗하고 비쩍 마른 사내였는데, 사람들을 대할 때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고양이를 보기만 하면 표변했다. 원수를 만난 듯 적대감이 땀처럼 솟아 나왔다. “저 놈의 웬수들. 야, 이놈들아 딴 동네로 좀 가라. 니들 때문에 내가 잘리게 생겼어.”라고 소리치며, 빗자루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래봐야 우리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올 수 없어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왜 우리 때문에 본인이 잘릴 수 있다는 위기를 느꼈는지 짐작이 가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벌집을 지키는 사내는 특정 여성과 마주치면, 얼굴이 사색이 됐다. 잘 먹어 살집이 있는 여성이었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어딘가 사나운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마치 우리와 같은 종족인가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다른 날처럼 덩치 큰 고양이 두 마리가 코를 박고 밥을 먹고 있었고 난 멀리서 입에 침을 흘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와 닮은 여성이 마침 지나가다 고양이를 보더니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오~ 고양이가 아닌 사자 같은 모습이었다.

과장된 몸짓과 괴성으로 고양이들을 쫓아내더니 제복 입은 사내를 고함쳐 불렀다. “아니, 아저씨. 제가 계속 얘기했잖아요. 주민들 민원 때문에 죽겠다니까요. 저 놈들 때문에 강아지 산책을 못 시키겠다는 둥, 아이들이 더러운 저 새끼들을 만지고 들어와서 걱정이라는 둥, 주차할 때 걸치적거린다는 둥, 별의별 얘기가 다 들어와요. 저 놈들이 단지에서 새끼라도 싸지르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제발 좀 어떻게 해보세요, 이거 해결 안 되면, 경비반장님한테 직접 따질 거예요”

총알 같이 쏟아 내니, 사내가 당황해서 얼굴이 벌게진 채 아무 소리도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암사자 같은 고양이 얼굴의 여자에게 한참을 혼나더니 혼이 빠져서는 “씨팔,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중얼거렸다.

어쨌든 거기 사는 사람들의 우두머리 같은 여자에게 종종 혼나고선 제복 입은 사내는 악에 받친 듯했다. 그 사내 때문에 밥 먹는 것이 더 힘들어졌고 움직임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라고 불리는 삭막한 곳에서 사는 것은 전쟁과도 같았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타이밍을 놓치면 배를 곯아야 했다. 사람들이 밥을 주니 고맙기도 하면서도 사람들 때문에 못 살 것 같은 이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래봐야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든 똑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벌집에서 살았다.


난 하루하루 말라갔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화단 속에 숨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무료함을 달래던, 벚꽃 잎이 날리는 어느 봄날 오후였다. 그때 그를 처음 봤다.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달라서 그에게 시선이 확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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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에서 투닷건축사사무소를 꾸려가고 있는 건축가 조병규입니다. 지금은 남의 집구경을 하는 SBS 좋은아침하우스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연락처 : 010-770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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