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건축가 Jan 20. 2023

숲에 숨은 사진관


1월의 제주를 얕봤다.

재킷 하나로는 제주의 바람을 감당하기에 버거웠고 출장 이틀 동안 그려지는 건, 내 침대의 이불 속이었다.

그나마 농원의 푸른 숲이 바람을 막아서고 피떡같은 붉은 동백이 눈을 뜨겁게 해줘서 다행이었다.



제주 서귀포 남원에는 경흥농원이라는 오래된 농장이 있다.

남원의 감귤과 키위는 이 곳에서부터 시작됐고 선대 회장님께서는 30만평이 넘는 농장을 한땀한땀 가꾸셨다고 한다.

동백과 대나무, 먼나무, 향나무,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무들이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선대 회장님의 나무를 좋아하는 지극한 마음은 지금의 회장님에게 전해지고 인건비 상승으로 늘 손해 뿐인 농장이지만 여전히 자키시고 지켜가려 한다. 

회장님에겐 그저 농장이 아닌 품 넓은 아버지와 다름없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일까. 회장님은 현재 농장을 활용한 관광농원으로의 개발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관광객의 손을 타 훼손되는 숲을 보고 있기 힘드실테니 당연한 마음으로 이해했다.

다만, 농장이 지속되기 위해선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는 필요했고

우린 이 아름다운 숲을 잠깐 즐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함께하는 특별한 장소를 만들기로 했다.

동백 숲길, 먼나무 아래, 작은 연못 등이 배경이 되는 야외 웨딩 스팟을 만들고

농장 초입에는 실내 스튜디오와 운영 사무실을 건축하고 중정과 앞마당을 활용해 스몰 웨딩도 해보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다.

야외 웨딩 스팟은 장동욱 무대설치 감독이 맡고 실내 스튜디오는 우리의 몫이 됐다.


제주는 하수 등의 문제로 규모나 용도의 제한이  심하다. 

실내 스튜디오와 운영사무실은 90평의 크기 안에서 해결되어야 했다.

우린 이 90평의 존재 자체도 지워버리고 싶었다.

이 농장의 주인공인 숲을 드러내고 스튜디오는 그 숲에 숨어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겐 축복이다.

이제 심의와 허가를 앞두고 있고 제발 최초의 제안이 끝까지이기를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재즈와 같이 사라진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