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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Feb 20. 2023

스위스, 독일 여행 첫째 날

취리히의 명동을 거닐다

한국을 떠난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다 버리고 떠난다.

일주일 동안.

좋은 기회가 있어 독일로 답사 겸 공부 겸 놀러 간다.

처음 뵌, 인스타로 이미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명성으로 뵙고 싶은 건축가들을 만나 같이 여행할 수 있어 기쁘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취리히 공항에 도착하는데 하루의 시간을 보냈다.

독일 숙소에 가기 전 세 시간가량 취리히 시내를 둘러볼 시간이 주어졌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취리히의 명동, 청담동 같은 동네라 한다.

중심부 쪽에는 차량이 거의 다니지 않고 트램과 사람이 섞여 다닌다.

아쉽게도 일요일이라 로드샵은 문을 닫았고 그냥 정처 없이 명동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쿤스트하우스라는 스위스에서 제일 큰 미술관을 만났다.

길을 놓고 신관과 구관이 마주하고 있는데, 신관은 아모레퍼시픽 건축가로 알려진 치퍼필드의 작품이다.

전통적인 석조건물의 외관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미술관의 단순한 매스는 디테일 많은 기존 건물들에 절대 꿀리지 않고 조화로웠다.




시간이 많지 않아 표를 끊고 관람하지는 못했다.

1층의 홀과 기념품점 정도만 돌아보고 나가는데, 1층의 홀은 개방과 통제의 방식이 절묘하다.

육중하지만 가볍게 작동하는 큰 문은 시각적으로는 폐쇄적이나 드나듬을 방해하지 않고 일층의 홀은 세개층이 개방되어 구관과 광장 쪽으로 열려 있다.





햇살이 좋고 봄 같은 날씨라 시내를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시작으로는 충분했다.

길을 걷다 노상에서 커피 마시며 사람 구경하는 것도 좋았고 리마트강에서 오리와 백조 노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리마트강이 아름다운 건 도시 풍경과 나무와 산의 콜라보 덕분일 텐데, 오래도록 머릿속에 담아두고 싶어서 한참을 바라봤다.

취리히에 세 시간밖에 못 있는다는 것이 내 생애의 삼 년을 까먹은 것처럼 아쉬웠다.

다시 올 수 있을까.






취리히 명동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가까이 달려 독일 시골 마을의 숙소에 도착했다.

여섯 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사방이 깜깜해 동네 분위기를 살펴보기 어려웠으나 마치 홍천이나 양평 시골에 온 기분이었다.

명동을 달려 홍천에 왔다.


유럽의 시골 민박집(물론 가본 적은 없지만) 같은 분위기의 숙소는 아담하고 깨끗했다.

창 밖으로 몇 채의 시골집이 보이고 저기 낮은 언덕엔 나무 한그루 서있다. 유화의 기름 냄새가 나는 듯한 풍경에 마음이 따숩다.

침대 옆에 낮은 선반이 있는데, 아래를 보니 라디에이터다.

오~ 내가 진짜 유럽에 왔구나를 깨닫게 해 준 작은 소품이다.





저녁 식사는 호텔에서 했다.

송아지 고기 스테이크에 지역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를 곁들였다. 맥주는 향기로웠는데 꽤 셌다.

500 두 잔에 취해 숙소에서 하기로 했던 2차는 소주 몇 잔으로 마감하고 일찍 잠을 청했다.

그런데,

새벽 3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소변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눈이 말똥하고 머리도 또렸해졌다.

젠장, 시차적응의 실패인가.

억지로 잠을 청하다 이 또한 유럽여행의 특권 아니겠는가 싶어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끄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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