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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Feb 22. 2023

스위스, 독일 여행 둘째 날

루체른


첫째날, 시차적응에 실패하고 말똥말똥한 정신을 좀 지치게 하면 잠이 올까 싶어 쓰기 싫은 여행기를 끄적였다.

결국 첫째날의 여행 일기를 다 썼건만 잠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허탈한 마음에 호텔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짙은 안개가 어둠 대신 사위를 가리니 멀리 가기가 좀 거시기 했다.

댕댕이와 산책하는 이들을 구경하며 담배 한대 피우고 있자니 동행인들이 한둘씩 나왔다.

새벽부터 전화에 시달린 소장님, 나처럼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소장님, 아주 푹 자서 일찍 깬 소장님 들이 나와서 습기를 잔뜩 머금은 낯선 공기를 폐속에 넣었다 뺐다했다.



시골 밥상처럼 푸짐한 호텔 조식을 먹고 오늘의 첫 행선지인 sto 본사로 출발했다.

sto는 스터코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스터코는 유럽에서 아주 많이 사용되는 건물의 외장 마감재이다.

목조주택은 거의 다 스터코로 마감되어 있고 일반적인 건축물도 반 이상이 스터코 마감이다.

유럽에서 스터코를 생산하는 업체 중 sto는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거의 최상급이라 할 수 있다.

sto 본사는 독일 경계를 살짝 넘은 스위스에 있었다.

수십번 sto를 우리의 건축물에 적용하면서 현지의 기술력과 생산과정이 궁금했었는데, 마침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스토 공장과 전시장, 사무실 모두 다양한 sto로 마감되어 있어 그 자체가 전시장 같았다.

유명한 건축가를 통해 스토 마감의 확장성을 실험하기도 했는데, 우연히 피터 쿡의 작업도 볼 수 있었다.

스토 책임자로부터 스토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목소리가 참 좋았다는 기억만 남았다.

영어 공부 좀 할걸.


sto 전시장 내부


피터 쿡의 sto를 사용한 패턴 실험


본사 책임자의 브리핑이 끝나고 sto 생산공장을 둘러봤다.

공장같지 않게 깔끔하고 정돈된 내부가 놀랍다.

자동화 되어 있어 몰탈 배합부터 조색까지 전 과정을 로봇이 다 한다. 그 큰 공장에 관리자 한두명 뿐이다.

전시장에서 sto의 제품군을 구경하는데, 써보고 싶은 제품이 정말 많다.

한국 sto 지사팀에게 물어 보니 사용은 거의 다 가능하단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돈이다.

겁나 비싸다.


sto 공장 내부


조색 장치


스토 공장 내 함바집에서 점심을 먹고 루체른으로 향했다.

루체른에는 아주 유명한 현대 건축물이 있다.

장누벨이 설계한 kunstmuseum luzern 이다.

시민을 위해 거대한 우산을 씌워 놓은 것같은 하이테크한 미술관이다.

그 바로 옆에 sto의 건식공법 벤텍시스템이 적용된 루체른 공과대학 건물이 있고.

이 두 건물이 오늘 건축 답사 대상이었다.


루체른 공대 입면의 첫 느낌은 sto 홍보 책자에서 봤던 것보다 다소 실망스럽다였다.

sto ventec 이라는 건식 패널 공법을 적용하여 리노베이션한 건물이었는데,

사선으로 돌출되고 드러난 입면이 다이나믹하다라고 느껴지기 전에 분절없이 연속된 면 때문에 스케일이 왜곡되어 있다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조금 실망한 상태에서 내부로 진입했을때 반전이 있었다.

내부는 외부의 특이성을 넘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감각이 넘쳐났다.

중심부에 위치한 한쌍의 계단이 일단 압권이었다.

그 자체가 조각같아서 계단이 공간을 다이나믹하고 에너지 넘치게 만들고 있었다.

sto ventec으로 리노베이션한 루체른 공대 전경


건물 중심에 위차한 한쌍의 계단


육중한 계단이 날렵해 보이는 아이러니가 있다


벽면은 sto의 러프와 메탈릭을 섞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색과 질감의 요소를 한데 잘 묶어두고 있는 것은 바닥재 덕분이었다.

도장이긴 한데 어떤 건지 물어봐도 관계자가 잘 모르는 듯했다.

루체른 공대는 그 자체가 거대한 sto 전시장이었다.

sto의 첫 답사지로 선택할 만했다.

2층 강의실 내부에는 곳곳에 천창이 뚫려 있는데, 옥상의 천창까지 연결되어 있어 자연채광의 유입이 좋다.

화이트의 책상과 그 배열을 따르는 천정의 루버 덕분에 밝고 활기차다. 강의실 내 울림을 방지하기 위한 녹색 커튼이 멋졌다.

햇빛에 목마른 유럽인들은 정말 곳곳에 천창을 두는 듯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쉬는 곳에는 여지없이 천창이 있다.


천정 곳곳에 천창이 있다




루체른 공대 바로 옆에 위치한 kunstmuseum은 내부 공사 중이라 아쉽게도 휴관이었다.

아쉬운대로 공용홀 부분만 돌아보고 나왔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음에도 내부 공간의 금속은 여전히 번쩍거리고 하이테크함을 유지했다.


거대한 슈릅을 쓰고 있는 듯한 kunstmuseum luzern


쿤스트뮤지엄의 정면


쿤스트 뮤지엄의 내부 공용홀

쿤스트 뮤지엄의 커튼월에는 전부 수평 루버가 설치되어 있다.

쿤스트 뮤지엄 뿐만 아니라 남향에 면한 주택, 일반 건물도 거의 예외 없이 수평 루버나 외부용 블라인드가 설치되어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루버에 대한 집착이 크네'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는데, 후에 그 이유를 몸소 체험하고 깨닫게 되었다.

독일과 스위스에 있는 오일동안 참 다행스럽게도 구름 한점없이 맑았다.

그런데 한 겨울임에도 내리쬐는 태양빛의 강도가 한국과 비교해 많이 셌다.

겨울도 이런데 여름은 어마어마 하겠구나 짐작이 갔고 남향의 루버는 디자인의 문제라기보단 꼭 필요한 장치였던 것이다.


두 건물을 답사하고 세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도시와 숨을 함께 쉬 듯 느린 들숨과 날숨으로 루체른의 분위기를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눈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벅차오른 마음을 성급히 아내에게 톡으로 전했다.

너와 꼭 다시 오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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