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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Feb 26. 2023

스위스, 독일 여행 셋째 날

비트라 그리고 안개 낀 울름

스위스를 떠나 이제부턴 독일 일정이다.

미디어에서나 봤던 비트라 공장을 방문했다. 

비트라에서 진행하는 건축 투어로 공장을 둘러봤는데, 총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이다.

투어는 #비트라 #샤우데포에서 시작한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디자인한 사우데포는 고지식할 정도로 절제된 전형적인 박공지붕 형태의 본 건물과 그 앞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과 건물은 별개가 아닌 하나로 읽히는데, 재료의 통일성이 가져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마당이 일어서 공간을 한정한 듯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강력한 공간이다.


샤우데포의 입구와 그 앞의 마당


바닥과 벽의 벽돌 색상은 동일하나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벽에 쓰인 벽돌 때문이다. 

구멍 있는 온장의 벽돌을 반으로 쪼개어 쌓고 줄눈은 깊게 처리했다. 덕분에 다소 거친 질감을 만들어 냈고 시간이 달라붙어 건물의 나이를 종잡을 수 없게 했다.


구멍 있는 벽돌을 세로로 쪼개 쌓았다


샤우데포와 바로 인접하여 #자하하디드 가 디자인한 그 유명한 비트라소방서가 있다. 

현재는 비트라의 행사나 회의 등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소방서 직원들의 민원이 빗발쳐 소방서로는 오래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 공간을 둘러보는데 장시간 있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웠다. 

선언하고 강변했던 그 주장의 무게는 가볍지 않겠으나 내게는 선 듯 동의되지 않는 건축이다.

스스로 비장소가 되어버린 비구니 같은 모습이랄까. 난 왠지 처연해 보였다.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한다는 차고지
똑바로 서있는 벽이 하나도 없는 화장실 공간, 싸다가 오바이트 할 것만 같다.
좌측이 샤우데포, 우측이 비트라 소방서이다

소방서가 1993년에 지어졌고 샤우데포가 2016년에 오픈했으니 시간의 갭은 무려 20년이 넘는다.

헤르조그 드 뫼롱은 어떤 마음으로 소방소 옆 자리에 샤우데포를 앉히려 했을까? 

첫 인상은  소방소와의 대비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느꼈는데 돌아보고 나오며 든 생각은 존중과 배려였다. 낮은 박공의 물매는 샤우데포 만의 독특한 인상의 정면을 만들고 있는데, 그 이면엔 옆자리의 거장에 대한 스스로 낮춤과 예를 다함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봤다. 


비트라 소방소와 샤우데포 사이의 길을 따라가면 좌측엔 #알바로시자의 공장이 우측엔 #니콜라스그림쇼 의 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사이를 거대한 철골구조의 캐노피가 연결하고 있는데, 우천시 지게차 등의 이동 동선을 고려한 장치이다. 비가 오면 센서가 작동해서 저 거대한 캐노피가 문 위쪽까지 내려온다고 한다.

등뼈를 닮은 구조물이 낯설지만 아름다웠다.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겠지만 덕분에 소방서를 가리지 않고 그림쇼의 공장과도 조화로울 수 있었다.

사진에선 좌측이 니콜라스 그림쇼의 공장, 우측이 알바로 시자의 공장이다

길을 걷다 교차로에서 우측으로 돌아 한참을 가면, #사나 가 디자인한 거대한 물류창고가 빙벽처럼 눈 앞에 드러난다.

사람의 눈높이에서는 전체의 크기와 형태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새의 눈높이에서 보면 하나의 큰 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빙하같기도, 광활한 부지에 솟은 거대한 호수같기도 하다.

그 거대한 몸으로 내 몸을 보지 말고 내 작은 물결을 눈여겨 봐달라고 말하는 것같다.

저 큰 덩치에 걸맞는 큰목소리가 아닌 조용하게 귀에 속삭이니 가서 쓰다듬지 않을 수가 없다.

매만지며 속삭였다. 

'너 참 근사하구나'



자유로운 곡선처럼 보이는 pvc 패널

니콜라스 그림쇼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공장 사이를 지나면 저 멀리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축을 하는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보면 저거 안도의 건물아니야? 라고 짐작할만 하다. 

맞다. #안도다다오 가 디자인한 컨퍼런스 파빌리온이다.


길게 이어진 벽을 따라 걷다보면 좁은 출입구를 만난다.

내부의 공간은 기하학적 형태의 공간이 중첩되고 연결된 전형적인 안도의 공간이다.

바로 옆에 자리한 프랭크 게리의 건물을 벽을 세워 의도적으로 가리려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파빌리온에 들어서면 중정이든 내부 공간에서든 비트라라는 장소를 인지하기 어렵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고민은 있으되 정작 비트라라는 장소에 대한 고민은 부재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같은 모지리가 안도 다다오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비트라 공장이 1981년 화재로 소실되고 롤프 펠바움이 이후 세계적 거장들에게 공장의 여러 프로젝트를 의뢰하며, 하필 다다오에게 컨퍼런스 파빌리온을 의뢰한 까닭은 뭘까? 라는 생각을 했을때 롤프는 건축가를 보는 눈이 꽤 높았구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안도 다다오가 파빌리온이 아닌 공장을 설계했다면 어땠을까?





안도의 파빌리온 옆에 위치한 #프랭크게리 의 뮤지엄은 유료이기도 하고 시간 제약도 있어 조각을 바라보듯 스쳐 지났다.

조형의 요소들이 내부 공간과 어떻게 관계하는지 궁금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프랭크 게리의 뮤지엄


종착지는 헤르조그 드 뫼롱이 디자인한 #비트라하우스 이다.

sto 사의 대표 레퍼런스이기도 하고 비트라 캠퍼스를 견학하게된 주목적이기도 하다.

일부 외벽의 백화와 얼룩이 심해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이런 상태의 건축물을 대표작이라고 보여주려 한 것인가 혼란스러워 sto 본사 직원에게 물어보니 지붕의 하자로 인해 콘크리트와 단열재 사이에 물이 침투했고 그 결과로 발생한 상황이라며 본인이 시공한 것도 아닌데 미안해했다.

곧 지붕 보수와 함께 일부 벽에 생긴 백화부분도 보수할 예정이라고 했다.

비트라하우스는 솔직히 외부보다 내부 공간이 더 좋았다.

단일 가구를 전시하기 보단 각 장소의 성격에 맞는 공간으로 가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이케아의 전시장처럼.

이케아의 전시장이 평면적 구성에 그쳤다면 비트라하우스는 입체적으로 보여주는데, 거기에서 더 나아가 공간과 공간의 연결이 극적이다.

북쪽 면의 일부가 변색되어 있다
각 테마의 공간이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트라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내일 일정을 위해 #울름 으로 이동했다.

최종 목적지는 뮌헨이지만 이동 거리가 길어 비트라 캠퍼스가 위치한 바젤과 뮌헨의 중간 지점에서 하루 묵어 가기로 한 것이다.

독일의 #아우토반 을 달렸다.

아쉽게도 우리가 탄 차는 버스라 시속 100km로 속도가 제한되어 엄청 빠르게 달리는 차 들을 구경만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옆에 겁나 빠르게 막 달리는 차가 지나면, 버스가 움찔했다.

3시간 가까이 달리다 휴게소에 들렀다.

1유로를 내고 화장실을 이용하는데(야박한 것들) 1유로에 해당하는 바우처를 준다.

결국 휴게소에서 싸지만 말고 뭘 좀 먹고 가라는 건데, 양이 많은 음료를 사면 다시 오줌될까봐 양 적은 잭콕을 샀다.

5유로 정도인데, 오~ 요거 맛나다. 딱 잘 말은 #잭콕 맛이다.

한국에서 팔면 잘 팔리겠다.



독일 휴게소에는 꼭 맥도널드가 있


호텔에 들어와 각 팀별로 작은 술판을 벌였다.

처음 이틀은 한국에서 준비해 온 컵라면에 소주로 가볍게 한잔하고 마무리했다.

오늘은 좀 다른 걸 먹기로 했다.

숙소가 울름의 도시 내에 있어 걸어서 마트에 갔다.

안개가 짙은 밤거리를 걷는데 마녀라도 튀어나올 분위기다.




주종은 와인으로 정했다. 와인이 엄청 저렴하다.

와인에 빠삭한 스몰러건축의 최민욱 소장의 도움을 받아 세병을 구매하고 치즈, 살라미, 올리브를 사 왔다.

6명이면 세병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작은 호텔방에 술상을 차리고 소장님들과 여수, 서울, 양수리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두시간 만에 와인은 바닥나고 #기린건장 #이경호 대표께서 면세점에서 구매한 대용량 발렌타인을 깠다.

12까지 이어진 술판을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 오는데, 모소장이 아쉬운 눈빛을 보내왔다.

나 역시 조금 모자란 알콜이 아쉬워 옆 방의 문을 두드렸다.

그 방엔 모어레스의 김영수소장, 프룹의 허병욱소장, 스몰러의 최민욱소장, 예하의 조한재소장 그리고 미래개발의 이민호 대표가 방바닥에 앉아 와인을 먹고 있었다.

둘이 더 끼어 앉아 바닥을 보이는 와인을 나눠 마시며 조한재 소장의 돌려까기 시전을 감상했다.

모어레스의 앞뒤를 바꿔 ‘레스모아’라 부르는 돌려까기는 최고였다. 

추억의 신발 브랜드를 안주 삼고 돌아가 맞닥뜨릴 현실을 쓰린 소주로 마비시키다가 새벽 2시쯤 결국 모든 술을 비우고 술자리를 파했다.

그리고 그 끝은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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