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는 까닭
비는 점이 아닌 선
시간을 끊고 내린다
이제 세상은 상영 중이 아니다
비가 드리운 어둠 속에서
현상한 오래된 몇 장의 사진
소중할 거라 생각했던
장면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폭우라도 쏟아지면
스크래치 난 사진마저도
건질 재간이 없다
나에게만 유효한 시간
세상은 비에 녹아버리고
이제 비와 나만 남았다
비가 내리면
시간을 따라 움직이던 나는
고장나버린다
세단기로 잘려 나간 시간은
원망보단 상처를 남기고
난 알콜로 상처를 닦아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비 오는 날
내가 술을 마시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