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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Jun 04. 2023

빌라, 최선의 선택지일 수는 없을까?

서울 강북의 어디메,  

4세대의 다세대주택이 있더랬다.

1세대의 주택 가격은 3억 중반 정도였고 한 개인이 각 세대주와 협상하여 모든 세대의 주택을 매입하였다.

매입한 전체 금액은 현 시세의 땅값에 미치지 못하였다.

집값이 땅값보다 적은 아이러니, 

매입한 사람은 기존의 다세대 주택을 철거하고 단독주택과 상가를 새로 지었다.

참, 기발한 투자라 아니할 수 없다.


위의 사례는 실제 했다.

천대받는 빌라의 현주소를 절묘하게 파고든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다.


소규모 공동주택이 우리나라에서 어느 때부터 '빌라'라는 이름으로 불려졌을까?

빌라는 유럽의 고급주택을 지칭하는 말이다. 70년대 일본에서 4층 정도 규모의 맨션이 지어지고 있었고 아마도 그러한 맨션이 변형된 형태로 수입되어 적용된 것이 우리나라의 ‘빌라'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단독주택보다 규모가 크니 ‘빌라’란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 같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70~80년대 도시의 지가 상승이 다가구, 다세대주택이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됐을 것이고 아파트 재개발이 본격화되며 아파트가 공급이 시작되기 전이나 혹은 공급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주택 수요가 급증해서 더 빠르게 많이 지어졌을 것이다. 


이런 과정 중에 아파트와 빌라의 계급적 차이는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빌라는 아파트라는 종착지에 다다르기 위해 잠시 들리는 기착지 같은 것으로, 아파트에서 살고 싶지만 경제적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사는 곳으로써의 인식이 굳어지게 되었다.

서민들의 주거 수요를 일정 부분 감당해 주는 순기능이 있으나 그건 양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이었고 저렴한 집이니 저렴한 환경을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라는 일종의 무시와 차별이 깔려있는 주택이 '빌라'였다.

여건이 되면 벗어나고 싶은 곳,

오래 살고 싶지 않은 곳이 '빌라'였다.


'크고 좋은 집'이 빌라의 기원이고 보면, 처음부터 그러한 목적으로 지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빠르고 싸게 지어 싸게 공급하는 것이 단독주택과 아파트 사이에서의 유효한 상품전략이 되었고 그것을 장려하고 중계하는 거간(공인중개사) 들이 시장을 키웠을 것이다.

싸고 빠르게 지어진 탓인지 빌라의 노화는 빨랐다.

감가상각의 폭이 컸고 위와 사례와 같이 집값이 0 이 아니라 오히려 땅값을 갉아먹는 애물이 돼버린 것이다.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지 빌라는 요 근래에 들어 최악이 되었다.

'빌라왕'으로 민낯이 드러난 전세, 매매 사기 때문이었다.

비단 빌라왕 개인의 문제였을까?

빌라를 '사는 집'이 아닌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행업자, 그에 발맞춰 집의 성능은 뒷전이고 오직 돈을 남기는 것이 목표인 시공업자, 붕어빵을 찍어내 듯 기계적, 반복적으로 설계를 하는 건축사, 집이야 어찌 됐든 거간을 성공시켜 두둑한 리베이트를 챙기는 것이 목적인 중개사, 부도덕한 금융 종사자들이 함께 벌인 죄질이 아주 나쁜 사기인 것이다.

주도했던 사람인가, 소극적 가담자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모를 리 없고 더 중요한 것은 누구도 존재하게 된 '집'에 대해, '사는 사람'에 대해 책임질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집'은 그저 '돈이 되는 어떤 것' 일 뿐이었다.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어 팔아보겠다는 상인의 자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저 협잡꾼일 뿐이다.


최악의 선택지로 전락한 빌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빌런'이 '빌라'에서 비롯된 것처럼, 빌라는 그렇게 계속 주거의 악당으로 머물러 있게 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빌라왕이 남긴 상처는 크고 아프고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상처가 드러났기에 치료의 방법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 

도시에 아파트만 존재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아니 되기 때문이다.


거주자에게 있어 차선이 아닌 최선의 선택이 '빌라'이기 위해선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매매나 전세 등의 안정성이 담보되고 성능에 문제가 없는 '살고 싶은 집'이면 된다.

문제는 '어떻게'다.



부족하지만 건축에 몸 담은 사람으로서 몇 가지 짧은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1. 빌라를 분양받으려는 사람은  '빌라를 지으려는 자(건축주, 시행자)', '빌라를 설계하는 자(건축사)', '빌라를 짓는 자(시공자)'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 등기부등본 상의 근저당이나 건축주의 인적 사항 정도가 다이다.  조금 더 알려고 하면 건축물대장에서 건축사나 시공사의 이름 정도는 확인할 수도 있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 그것 만으로는 집의 상태를 알기 어렵다. 

하물며 tv나 냉장고를 사더라도 제조사가 어디인지 성능은 어떤지 확인하고 사는 마당에 내 가족이 사는 집에 대해 이렇게 깜깜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참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가 사람들이 빌라를 기피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짓기만 하면 매매가 되던 시절은 진즉에 끝났다. 

거기에 불신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지으려는 자'는 보다 신중한 접근을 하게 될 것이다. 

안정성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려 노력할 것이고 상품의 가치를 높여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설계자의 선정 조건은 설계비가 아닌 상품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고 시공 또한 시공 능력, 주택의 성능 유지, 브랜드 등이 선정의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단독주택 시장에 '자이'가 등장한 것처럼, 빌라 시장에도 대형 건설사가 브랜드를 걸고 참여할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2. 빌라의 건축 설계 시장에서 제대로 된 설계를 하려는 건축사는 배제되어 왔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었다.   

건축가 없는 건축처럼, 이른바 건축업자가 주도하던 것이 빌라 건축 시장이었다.

원맨밴드인 양, 혼자서 시행, 설계, 시공을 감당하는 업자도 있었다. 비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설계와 시공이 한 몸처럼 움직이니 문제가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 없었다.

설계는 집의 환경보다 시공하기 쉬운 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시공의 전문성도 없는 업자가 이마저도 따르지 않고 경험치로 시공하였다. 설계자이자 감리자는 이런 업자 뒤치다꺼리에 바빴다.

설계와 시공이 한편이 되어 건축주를 후렸고 디자인은 둘째치고 주택의 성능마저도 담보되지 못하는 빌라가 만들어졌다.

아마도 '집 짓다가 10년 늙는다'는 말이 이때 나왔지 싶다.


문제가 지속되자 정부는 다가구, 다세대주택을 지을 수 있는 자격을 종합건설업면허 업체로 제한하였다.

단종 업체가 건축주 직영 방식으로 공사하던 것을 종합건설업체가 도급으로 진행하면서 그동안 문제되었던 하자보수 문제, 책임 소재 등이 일부 해소되기는 했지만 간접비 증가로 공사비가 상승하고 종합건설업 면허의 벽이 높아 건실한 단종 업체가 시장에서 배제되는 부작용도 발생하였다.


설계와 시공의 유착을 끊어내기 위해 '설계자'와 '감리자'를 분리하는 법안도 시행되었다.

감리자를 통해 설계자를 견제하고 시공사의 시공 과정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리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이는 최선의 선택이기보다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호미가 아닌 가래를 쓴 격이라 본다.

그간 설계자가 감리를 같이 진행한 것은 오래된 관행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맞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설계 내용과 의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공사가 되도록 관리, 지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자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부디 설계와 감리의 분리가 나눠먹기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지 않도록 좋은 효과를 발휘하여야 할 텐데, 개인적으로는 답답하고 부조리함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빌라를 시공할 수 있는 업체를 제한하고 설계와 감리를 분리했음에도 '빌라'의 상황과 이미지는 나아지지 않았고 대형 사고도 터졌다.

진단과 처방에 문제가 있었음이다.


자격을 제한하고 서로를 견제하는 소극적 방식이 아닌 능력을 검증하고 잘할 수 있는 업체를 발굴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진입장벽이 높은 종합건설업 면허로 벽을 세우기보다는 자격 요건이 완화된 소형건설업면허 등을 신설해 진입장벽을 낮추고 시공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전문 위원회 등을 설치해서 좋은 시공업체를 선별하고 추천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소규모 공동주택에 특화되고 시공능력이 검증된 시공 풀(pool)이 공개되어 있고 이 업체를 통해 시공을 하게 한다면 소비자가 갖는 의심(제대로 지어진 집일까?)을 조금은 해소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3. 현재 빌라가 가지는 '위치'가 수정되어야 '살고 싶은 집'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단독주택에 대한 선망이 늘어가고 있는 이때, '빌라'의 위치는 단독주택과 아파트 사이의 어디쯤이 아니라 맨 밑바닥 쪽이다.

이 위치를 아파트, 단독주택의 수평적 관계 사이에 위치시켜야 한다.

'낮은'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식되어야 '빌라'는 건강한 주거 대안으로 지속가능해진다.


빌라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나는 '도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공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빌라는 대부분 도시 안에 존재한다. 보통의 단독주택이 도시 외곽에 위치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동네의 골목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것이 빌라이고 이는 아파트의 단지와는 또 다른 도시적 특성을 가진다.

다양한 근린시설이 인접해 있고 마주침이 빈번하고 답답하지만 인간적인 스케일의 도시 안에 위치한다.


빌라는 단독주택만큼 자유로운 공간을 구현하기 어렵지만 굳이 아파트처럼 평면적일 필요도 없다.

단독주택처럼 여유로운 마당을 가지긴 어렵지만 아파트처럼 내 집에서 하늘을 볼 수 없는 환경은 아닐 수 있다.


이처럼 빌라는 아파트, 단독주택과 다른 도시적, 공간적 특징을 갖는다.

이 '다름'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묘수를 찾는다면, '빌라'는 '살고 싶은 집'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정동 다세대주택 계획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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