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장바구니는
늘 반쯤 비어 있었어
매일 보는 장
가득 채울 일이 없었거든
대신에 잔 술을 가득 채우고
연거푸 한잔 두잔
벌게진 얼굴로 딸 집에 얹혀사는
신세타령이 저물도록 이어졌지
축 늘어진 할머니의 젖을 빨면
이슬처럼 맺힌 하얀 방울
잔에 가득 찬 젓을 달라 칭얼대면
설탕 넣어 한 모금 마시게 해 줬어
할미와 내가 그렇게 함께 취해 휘적휘적
붉게 취한 해가
또 우리를 휘적휘적 따라왔지
장마가 길어지면
할머니는 시장에 가지 않았어
쌀만큼 감자를 좋아하던 강원도 우리 할머니
강판에 갈면 비에 녹은 진흙 같았지
한 장을 부치고 한 잔을 마시고
그렇게 한 병을 다 비우시고는
진흙같이 흐믈해진 세월을
서럽다 우셨어
오늘도 비가 억수로 오는데
저기 저렇게 감자가 많은데
할머니가 없어
안계신지 오래인데
비가 오고 감자전을 부치면
이렇게 살면 뭐 하나
한탄하던 할머니의 주정이 그리워
#시쓰는건축가 #장소의발견 #두물의날 #할머니의술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