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어느새 산 중턱이야
길 가의 이름 모를 풀꽃이 예뻐서
숲의 달콤한 숨을 쫓아왔을 뿐인데
어느새 저기 정상이 어슴프레 보이는 것 같아
구름에 가린 정상이 신기루인가
싶어 신발도 벗어던지고 마음이 조급해
돌부리에 차이고 이름 모를 풀에 베여도
저기 위만 보고 온 힘을 다해 뛰어올랐어
그러다 문득 깨달았지
난 그저 걷는 게 좋았을 뿐이었는데
뛰어오르다 새소리, 풀냄새, 싱그러운 꽃
다 뒤로 흘려버리고 나만 홀로 남았어
잠시 멈춰서 큰 숨을 쉬어봐
위로 쳐든 시선을 다시 길 위에 두고
팔을 벌려 풀에 기대고 코를 킁킁 거려
걷다가 걷다가 죽어도 좋을 것 같아
그래도 좋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