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슬비처럼 도시에 스며드는 음악의 방식
춘천의 새벽은 소리보다 먼저 호흡이 깨어난다.
호수 위로 얇게 번진 물안개가 도시의 감정을 닦아내듯 흘러간다.
말이 없어도 마음을 적시는 순간, 그 여백이 이 도시의 얼굴을 만든다.
크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보슬비처럼 조용히 사람을 품는 도시.
그 시간의 결을 떠올릴 때 나는 한 사람의 음악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리코더를 연주하는 한 사람. 그의 소리는 보슬비를 닮았다.
크게 울리지 않지만 오래 남고, 숨에서 시작해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든다.
리코더는 인간의 호흡과 가장 가까운 악기다.
화려한 금관의 광택 대신 손때 묻은 나무의 질감이 전부인 악기.
하지만 그 소박한 몸 안에는 숨의 떨림과 손끝의 온기, 그리고 시간을 견딘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가 담긴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 있는 소리. 그가 걸어온 길은 그래서 단단하다.
그는 리코더를 화려하게 연주하지 않는다.
호흡 그 자체로 음악을 건네며 오랫동안 지켜온 자신의 소리를 믿는다.
그 소리가 견딜 수 있는 속도를 선택해 왔다.
비주류의 길이 주는 고요함과 고독을 그는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
작지만 깊게 스며드는 방식, 그 축적이 그의 음악을 보슬비처럼 만들었다.
그의 연주는 관객을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공간에 천천히 스며들어 마음속 가장 조용한 층을 건드린다.
물결 하나가 호수를 흔들어 먼 곳까지 번져가듯 그의 소리는 서두르지 않고 도달한다.
춘천이 고음악이라는 단어를 품을 수 있는 이유는 거대한 전략이나 조명 때문이 아니다.
고음악은 화려하지 않지만 본질적이다. 바로크 시대의 호흡이 살아 있는 음악.
그 절제와 여백은 춘천의 속도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도시의 정서를 오래 가꿔온 사람들.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음악을 이어온 사람들.
그 여백을 실제로 가꾸어 온 이들 중 한 명이 그 연주자다.
그는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 작은 연습실, 작은 무대, 작은 호흡.
하지만 그 작은 축적이 도시의 정서를 지켜온 토양이 되었다.
수많은 비의 날들이 땅을 적시듯 그의 시간은 조용히 도시 안에 스며들어 감정의 층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그를 연주자보다 고음악의 토양지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오래 머물고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소리를 잃지 않은 사람.
도시가 스스로의 정서를 잃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온 사람.
도시는 결국 이런 사람들로 완성된다.
작은 울림을 오래 지키는 사람, 빠른 변화보다 시간을 곁에 두는 사람,
스스로 빛나기보다 천천히 스며드는 결을 가진 사람.
그들이 있어 도시의 감정은 무너지지 않고 예술의 토양도 마르지 않는다.
그의 연주를 들을 때면 춘천의 물안개가 떠오른다.
말없이 도시를 감싸는 얇은 결. 숨으로 빚어진 음악도 그렇게 도시 안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보슬비처럼,
천천히, 오래.
[Director’s Note | 디렉터 메모]
이 글은 춘천의 결을 닮은 예술인, 리코더리스트 조진희 님을 모티브로 쓰였습니다.
묵묵히 가꿔온 그의 시간이 보슬비처럼 도시의 정서를 적시며, 조용한 이정표로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에필로그】
자본의 속도보다, 단단한 '삶의 밀도'를 지닌 강원의 진짜 이야기를 계속 기록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