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남편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했다.
몬타나의 글레이셔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Going-to-the-Sun Road를 달리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경험이다. 거대한 봉우리와 빙하 계곡, 그리고 손대지 않은 자연이 펼쳐진 이 길은 마치 현실을 초월한 풍경 속을 달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는 장소가 있다. 산이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한 곳, 사람들은 그곳을 *우는 벽(Weeping Wall)*이라고 부른다.
처음 이곳을 마주했을 때, 우는 벽은 산의 균열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보였다. 마치 거대한 돌벽이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토해내는 듯했다. 물은 끊임없이 암벽을 타고 내려오며 작은 안개를 만들어내고, 그 안개는 길을 따라 천천히 흩어진다. 계절에 따라 이 벽의 모습은 달라진다. 봄과 초여름, 눈이 녹는 시기에는 물줄기가 넘쳐흐르며 벽을 따라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지나가는 차들은 물줄기 속으로 뛰어들 듯이 도로를 건넌다. 차창에 물이 튀고,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려지며 자연의 웅장함과 장난스러운 환영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반면, 늦여름이 되면 물은 한결 조용하고 부드럽게 흐른다. 마치 고요한 눈물이 스며들듯, 벽은 더 깊은 침묵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차 안에 앉아 물줄기 아래를 지날 준비를 하며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이 산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우는 걸까? 그것은 이곳의 빙하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애도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랜 세월 이 땅을 지켜온 야생 동물들과 그들의 터전을 잃어가는 세상에 대한 슬픔일까? 혹은 인간의 짧은 삶과 산의 영원한 존재 사이의 간극에 대한 연민일지도 모른다. 우는 벽은 단순히 물이 흐르는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의 연약함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차가 물줄기를 통과하며 창문과 앞유리에 물이 튀었다. 나는 창문을 내려 손을 밖으로 내밀었다. 손바닥에 닿은 물은 차갑고 순수하며 생명력이 넘쳤다. 마치 산이 직접 건네는 선물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거대한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는 강한 연결감을 느꼈다. 우는 벽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서 자연의 언어를 전하고 있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 암석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이야기였다.
우는 벽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물줄기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상징성에 있다. 가장 견고하고 영원할 것 같은 산도 때로는 연약함을 드러낸다. 그것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누구나 언젠가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를 흘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 눈물은 슬픔만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ㅛ길을 따라 여행을 이어가며 나는 슬며시 백미러를 통해 우는 벽을 다시 바라보았다. 점점 멀어져 가는 그 벽은 이제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여운은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우는 벽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이자 깨달음이다. 그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부드러운 손길처럼, 잠시 멈추어 삶을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글레이셔 국립공원의 웅장한 풍경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우리도 울 필요가 있다. 그것은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연약함을 경외하며 흘리는 눈물이다. 우는 벽이 흘려보내는 그 황금빛 물줄기처럼, 우리의 눈물도 결국에는 자연의 일부로 스며들어 새로운 생명과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