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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가을 숲 속의 찻집

by lee nam

숲 속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바람에 몸을 맡긴 나뭇잎들이 노란 물결처럼 천천히 내려앉았다. 손에 쥔 따뜻한 찻잔의 온기가 마음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나는 남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런 숲이 우리의 찻집이라니, 정말 근사하지 않아?” 내 말에 남편도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어 보였다. 우리만의 찻집이라니, 어떤 세련된 카페보다 이 순간이 더 운치 있게 느껴졌다.


이따금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찻잔 속 김이 하늘로 흩어졌다. 그 사이로 나뭇잎이 무수히 떨어져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더듬듯 나누기 시작했다. 남편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소곤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도 가을이었지?” 그의 말에 나는 살며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우리 사이엔 이런 바람과 가을 햇살이 있었고, 손에 닿는 공기마저 낯설고 설레었다.


“그래, 가을이었지. 우리 첫 만남도, 처음 길을 나서 걷던 날도.” 그 말에 남편의 눈빛이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리 멀지 않은 듯 느껴지면서도, 이제는 수많은 계절을 지나와 조금은 아련해진 시간. 그때 우리는 수줍고 서툴게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고, 나란히 걸었던 숲길 위로 속삭임이 가을 잎처럼 떨어지곤 했다.


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비치는 햇살은 금빛 실이 되어 숲을 엮어냈고, 바람결에 나뭇잎이 한 장씩 페이지처럼 흩날렸다. 이 가을빛 찻집은 아무런 인테리어가 필요 없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피어나는 따스한 빛, 그 빛 아래 천천히 잎이 뒹굴며 우리의 발길에 따라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조용한 숲이 만들어낸 그 자연스러움이 이미 완벽했다.


남편이 갑자기 내 손을 꼭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온기가 마음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 발걸음이 머물러 있을 때도, 천천히 이어질 때도, 시간은 마치 우리에게 맞춘 듯 조용히 흘렀다.


“이런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 남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숲을 감싸며 사라졌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담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러게,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가진 가을이니까.”


우리가 마시는 차 한 모금이 입안에 남은 온기를 남겨주고, 숲은 그 온기에 대한 대답처럼 더 깊은 향을 내었다. 나무의 향, 흙의 냄새, 그리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계절의 고요함.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져 우리가 서 있는 이 가을의 찻집이 됐다.


문득 남편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들어 보이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나는 그 미소를 바라보며, 우리 둘만이 이해하는 이 작은 세계를 한참이나 느끼고 있었다. 이제 찻잔이 비었지만, 우리는 빈 찻잔 속에 가을 숲의 추억을 가득 담고 찻집을 빠져나왔다. 바람이 불자 , 수많은 단풍잎 손들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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