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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맥도널드 호수 크루즈 여행

by lee nam

물결 하나 없는 잔잔한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가로지르는 작은 보트. 몬타나의 웅장한 대자연 한가운데, 맥도널드 호수(Lake McDonald)는 세상의 모든 소음과 번잡함을 멀리 밀어낸 채 우리를 품어주고 있었다. 맑고 깊은 호수 위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사진 속에서나 볼 법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으로 크루즈 여행을 시작했다.


아침 공기는 맑고 신선했다,. 공기 중에는 은은한 소나무 향이 배어 있었다. 크루즈를 타러 가는 길, 나무 사이로 아침 햇살이 뿌려놓은 빛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손을 맞잡고 보트로 발걸음을 옮기던 순간, 우리 부부의 마음은 이미 자연의 품에 가 닿아 있었다. 이 호수는 단순히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맥도널드 호수는 수천 년 동안 산과 하늘을 거울처럼 품어온, 신성하고 고요한 시간이 담긴 공간이었다.


보트가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자, 거울처럼 맑은 호수는 하늘과 산을 투명하게 비추었다. 양옆으로 펼쳐진 나지막한 산맥은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 산들은 위엄 있고 웅장했지만, 동시에 고요하고 자애로웠다. 산봉우리마다 햇살을 머금고 있었다. 그 빛은 호수로 내려와 부드러운 황금빛 물결을 만들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호수 위에서는 우리가 만들어낸 작은 물결조차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보트의 한쪽에 나란히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호수의 고요가 두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연결해 주는 듯했다. 물 위를 떠다니는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가 그 느림에 부드러운 박자를 더했다. “이 풍경 속에서 당신과 함께라서 참 좋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보트가 호수 한가운데쯤 이르렀을 때, 크루즈 가이드가 맥도널드 호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빙하가 깎아낸 깊은 협곡이 수천 년 동안 물을 머금으며 이곳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 호수는 몬타나의 모든 빛과 생명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호수는 대지의 모든 것을 품고 있었다. 저 멀리 설산에서 녹아내린 얼음물도, 나뭇가지 끝에서 떨어진 빗방울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과 느끼는 감정까지도 호수는 고스란히 품어내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45년 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우리는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지탱해 주며 여기까지 왔다. 마치 호수가 산을 비추고, 산은 호수를 감싸 안으며 서로를 지탱하듯이. 이 크루즈는 단순히 자연을 구경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새기고, 앞으로 걸어갈 여정을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보트가 천천히 항구로 돌아오고 있을 때, 우리는 다시금 주변의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 애썼다. 호수의 물, 산과 하늘의 반영, 그리고 우리가 함께 보낸 이 시간은 언젠가 먼 훗날에도 기억 속에서 반짝일 것이라고 믿었다. 크루즈 여행은 끝이 났지만, 호수가 보여준 그 고요함과 아름다움은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맥도널드 호수 삶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순간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서로가 함께여서 더욱 빛났다. 물결 위의 짧은 여정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삶의 본질과 서로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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