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cier 국립공웡 로건 패스에서 시작되는 하이드레이지 트레일(Hidden Lake Trail)을 걸으며, 나는 마치 자연이 숨겨둔 비밀의 문을 열어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이 산들바람과 함께 부드럽게 나를 맞아주었다. 고산지대 특유의 맑고 상쾌한 공기는 한 걸음 내달 때마다 폐 속 깊이 스며들었고, 길 양옆에 펼쳐진 고산식물들은 섬세한 손길로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처럼 아름다웠다. 알록달록 피어 있는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자연의 색채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졌다.
길이 점점 높아질수록 풍경은 더 넓고, 더 깊은 이야기를 품은 듯 보였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와 푸른 하늘이 맞닿은 곳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한참 걷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산비탈 위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산양을 발견했다. 그들의 흰 털은 햇살에 반짝였고, 나를 경계하기보다는 자연 속의 동료로 여기는 듯한 태도가 참 인상적이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우아한 움직임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이곳이 얼마나 순수한 세계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트레일 중반에 이르자 길은 조금 더 가팔라졌지만, 오히려 그 오르막길이 주는 도전감이 발걸음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바람은 점점 더 시원해졌고, 흘러내리는 땀방울마저 자연 속에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고비를 넘고 눈앞에 하이드레이지(Hidden Lake)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그 경치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산들 사이에 숨겨진 호수는 이름처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은밀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수면은 마치 보석처럼 빛났고, 그 옆을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들은 호수를 더욱 고요하고 신성하게 만들어주었다.
호수 근처에서 잠시 쉬며 그 풍경을 온전히 느꼈다. 호수 위로 스치는 산들바람은 마치 자연의 속삭임 같았고, 그 바람 속에 담긴 시간은 내가 잊고 있던 평화를 불러오는 듯했다. 곳곳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들의 흔적도 보였다.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움직이는 작은 다람쥐와 물가를 거니는 새들의 모습은 이곳이 그들에게도 안식처임을 보여주었다.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완벽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다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마음속엔 무언가 깊은 여운이 남아 있었다. 하이드레이지 트레일은 단순히 걸음을 옮기는 하이킹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과 내가 대화하고,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었다. 숨겨진 호수는 단지 이름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느껴지는 모든 경험까지도 ‘숨겨진 보석’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곳의 아름다움을 가슴속 깊이 담으며, 이 길이 내 삶에 또 다른 이야기를 더해준 것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