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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크레이지 홀스, 끝나지 않은 이야기

by lee nam

지난여름, 남편과 함께 사우스다코타의 크레이지 홀스 기념관을 찾았다. 러쉬모어 마운틴의 거대한 네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곳에서 멀지 않은 산중턱, 또 다른 웅장한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말 위에 올라선 채 멀리 산을 가리키고 있는 크레이지 홀스. 전설적인 라코타 족의 지도자가 아직도 살아 숨 쉬듯, 그의 형상은 눈앞에 묵직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아직 미완성 상태였음에도 조각상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였고,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 그 조각상을 바라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산을 가리키고 있는 그의 손끝,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려는 듯 눈길을 고정했다. 남편이 조용히 물었다. “저 손끝이 말하는 걸 느껴?” 그 손이 가리키는 곳은 단순히 지평선 넘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속한 대지, 그리고 그의 백성의 삶과 정체성을 향한 외침이었다. 크레이지 홀스는 단지 전쟁의 영웅이 아니었다. 그의 투쟁은 잃어버린 땅을 찾고, 빼앗긴 민족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고독한 항거였다.


기념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조각상의 제작 과정과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조각상의 건립을 넘어선, 인디언 민족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기념비적 시도였다. 흑백사진 속에 담긴 크레이지 홀스의 전설은 읽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한쪽 벽에 새겨진 그의 마지막 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의 영혼은 산과 함께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온전히 담고 있었다.


전시관을 돌아본 후, 우리는 다시 조각상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거대한 바위산과 조각상의 실루엣이 어우러지며 황혼 속에서 더욱 강렬해 보였다. 미완성의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은 완벽하게 다가왔다. 세월이 흘러도 끝나지 않는 작업. 어쩌면 이 조각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야 할지도 모른다. 라코타 족과 인디언 민족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상징하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드넓은 대평원이 펼쳐졌다. 그 풍경 속에서 크레이지 홀스의 손끝이 가리키던 땅과 그의 외침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 대지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한 민족의 정체성, 그들의 역사를 담고 있는 생생한 증거였다. 차가 계속 달리는 동안, 나는 조용히 되뇌었다. 그의 이야기, 그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이 땅 어딘가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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