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2

첫 운전, 그리고 새로운 문화의 시작

by lee nam

차 없이 살아가던 고국에서는 늘 대중교통과 발걸음이 내 삶의 전부였다. 복잡한 골목길, 시장을 지나치는 버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내가 머물던 도시는 다정했고, 도보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그러나 미국에 오며 그 익숙했던 삶은 단숨에 깨져버렸다. 넓은 도로, 한없이 이어진 차선, 걷는 대신 모두가 차를 몰고 다니는 문화는 내게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차가 없이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이 땅에서, 운전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었다.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한 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필요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학교, 장보기, 병원까지 어디든 차가 없으면 막막했다. 하지만 막상 운전석에 앉는다는 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시험을 위해 연습하던 날, 가슴은 콩닥거리고 손바닥엔 땀이 차올랐다. 신호를 기다리며 붉어진 정지등을 바라볼 때마다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왼쪽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직진일까?’ 한국에서는 필요 없던 이런 판단들이 여기서는 매 순간 내 몫이 되었다.


더 큰 어려움은 익숙지 않은 도로의 규칙이었다. 언제 우회전을 해야 하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첫 운전 시험에서는 결국 탈락했다. 차선을 지키지 못하고, 정지 신호에서 지나쳐버렸다. 뒷좌석의 감독관이 고개를 흔들 때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하지만 실패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다시 도전해야 했다. 운전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어느덧 두 번째 도전의 날,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시험장에 들어섰다. 차를 몰며 주변을 주의 깊게 살폈고, 속도를 조절하며 이 나라 도로의 리듬을 익혀 나갔다. 결국 합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 깊숙이 묻어뒀던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면허증을 손에 쥐고 나오는 길, 나는 비로소 이 새로운 땅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기분이었다.


미국의 자동차 문화에 적응하면서 나는 단지 운전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실수와 좌절 속에서 나를 다듬어가는 법을 배웠다. 차는 단지 이동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로 들어서는 문턱이었다. 이곳에서의 생존은 익숙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들을 배울 때 비로소 가능했다. 지금은 도로 위를 달릴 때면, 고국의 좁고 다정했던 골목길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차창 너머로 펼쳐진 미국의 끝없이 이어진 도로를 보며 나는 깨닫는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나아가는 용기가 삶을 앞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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