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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하루를 소중하게 산다는 것

by lee nam

나이가 들수록 하루의 무게가 달라진다. 젊었을 때는 하루가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일부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독립적인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같은 하루일지라도 어떤 날은 유난히 빠르게 흘러가고, 어떤 날은 조용히 나를 기다려준다. 시간의 흐름은 변함이 없는데, 내가 하루를 바라보는 시선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하루가 단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바쁘게 스케줄을 소화하고, 더 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의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그렇게 달려온 시간 속에서 내가 놓쳐버린 소중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아침에 떠오르던 햇살의 부드러움, 누군가 건넸던 따뜻한 한마디,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의 잎사귀 같은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이제야 비로소 소중하게 다가온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결국 길이로만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순간순간의 밀도와 깊이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있지 않을까? 하루가 아무리 짧아도 그 안에 깊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오래된 추억만큼이나 가치 있는 시간이 된다.


이제 나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예를 들어, 커피를 내리는 순간의 고요함이나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 오랜만에 친구와 나눈 대화 같은 것들. 이런 평범한 순간들이야말로 하루를 빛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하루 속에서 행복은 언제나 숨 쉬고 있다.


물론 모든 날이 완벽하거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허무함에 빠져버릴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들조차도 나를 완성해 가는 과정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이 조금 힘들더라도, 내일은 또 다른 기회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소중히 산다는 것은, 그날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크고 대단한 성취를 이룰 필요는 없다. 그냥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놓인 것들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루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하루를 온전히 살아보려고 한다.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부담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나를 둘러싼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내 삶은 길이보다 더 깊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하루는 단지 시간이 아니라, 내가 발견해 내는 작은 기적의 연속임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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