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에 이민 온 지 꼭 28년 만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나는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죽음의 그림자가 곧 다가올 것 같은 불안감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와 십 년이라는 시간을 선물로 받았다. 그 시간은 살아있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인생의 또 다른 축복이었다.
그때는 딸만 결혼한 상태였다., 아들 셋은 아직 미혼이었다. 어린 손녀가 갓 돌을 지나고, 작고 귀여운 손이 나를 꼭 잡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가 환하게 웃을 때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기쁨이 더 커졌다. 그 사랑스러운 웃음이 나에게는 작은 구원의 빛이었다. 암을 극복하고 맞이한 십 년은 이렇게 가족의 품 안에서 기적과 같았다.
시간이 흘러 아들 셋도 차례로 가정을 꾸렸다. 아들들의 결혼식은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선사했고, 나는 새로운 며느리와 손주들을 맞이했다. 어느새 손자와 손녀는 여덟 명으로 늘어났고, 이 작은 생명들이 내 삶을 가득 채우며 웃음과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 암을 극복했던 시간이 단순히 연장된 삶이 아니라, 축복의 시간임을 깨닫게 해 준 순간들이었다.
병을 이겨낸 뒤 나에게는 매일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특별히 기대하지 않아도, 아이들과 손주들이 함께 웃고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하나하나 소중했다. 돌이켜보면 대장암을 극복한 뒤의 삶은 단순히 개인의 투병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가족과의 관계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둘러싼 사랑을 재발견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감사의 마음은 점점 더 커져 간다. 삶이 내게 준 이 특별한 선물들을 떠올리며,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를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 그들의 따뜻한 미소와 함께라면 나의 남은 길은 두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