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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기도 이불

<신앙 수필>

by lee nam

10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고 1년 반 동안 투병 생활을 했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날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다. 치료로 인해 머리가 빠지고 몸은 뼈만 남은 듯 깡마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항암제를 맞고 나면 속이 뒤틀리듯 토하고, 피곤한 몸은 침대에 눕고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병실 창밖에선 시간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무겁게 내려앉은 그 고요 속에서 나를 다시 붙잡아 준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그중에서도 선배가 건넨 이불은 내 마음을 뒤흔든 가장 큰 선물이었고, 잊을 수 없는 위로였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어느 날, 선배는 손수 짠 이불을 들고 병실로 찾아왔다. 따뜻한 색감의 털실로 짜인 이불은 그녀의 말보다 더 깊은 위로를 품고 있었다. 이불의 촉감은 부드럽고 묵직했다. “이 이불에 기도를 담았어요. 힘내세요.” 그녀가 나지막이 건넨 말 한마디와 함께, 이불의 포근한 온기가 내 야윈 몸을 감쌌다. 이불을 덮고 있으면 병실의 차가운 공기가 어느새 사라지고, 선배의 마음과 함께하는 듯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마치 새벽 추위 속에 갇혀 있다가 따뜻한 아침 햇살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 이불은 단순한 따뜻함 이상이었다. 내게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기폭제였다. 가느다란 털실 하나하나마다 선배의 정성과 기도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이불 속에서 잠들 때면, 희미한 털실 냄새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차갑고 공허했던 병실의 침대가 포근한 안식처로 변했다. 이불을 덮고 있으면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눈물이 고였던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반드시 이 시간을 이겨내겠다고, 사랑을 전해 준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나를 일으킨 것은 선배의 이불만이 아니었다. 꽃다발을 들고 병실을 찾아와 밝게 웃던 친구들,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을 가져온 아웃들 그리고 이름 모를 사람들이 전해준 기도. 그 모든 것들이 서로 엮이고 이어져, 나를 덮어 주는 거대한 담요처럼 느껴졌다. 이 담요는 단순한 물질적 선물이 아니라,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사랑의 연대였다. 차갑게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작은 손길들이 내 고통을 덜어 주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 것이다.


겨울이 오면, 나는 선배가 건넨 그 이불을 꺼낸다. 여전히 부드럽고 포근한 이불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며, 그날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이불은 지금도 내게 묻는다. “너도 누군가에게 이 온기를 나눌 수 있겠니?” 나는 선배와 친구들처럼,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은 손길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내가 살아있음이 이미 증명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불은 내게 여전히 따뜻한 온기와 기도의 메시지를 전하며, 오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할 용기를 북돋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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