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떠나 시카고에서 38년 동안 살았다. 젊은 날,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고국을 떠났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부모님은 늘 내 마음속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였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고향의 하늘을 떠올리며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그리워하곤 했다.
아버지는 내가 미국에 온 지 21년 만에 돌아가셨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멍하니 전화기를 쥔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불러보셨을까? 내가 곁에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진 않으셨을까?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했다.
나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목소리는 여전히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해외 전화를 걸 때마다 아버지가 먼저 받으셨다. “너희들 건강하게 잘 있냐?” 첫마디는 언제나 같았다. “이서방이랑 아이들도 잘 있고?” 아버지는 내 안부만큼이나 내 가족의 안부를 챙기셨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엄마 바꿔줄까?” 하셨다. 그렇게 짧은 통화였지만, 그 안에는 아버지의 다정함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나는 늘 같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목소리는 영영 들을 수 없었다. 전화벨이 울려도 더는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으셨고, “엄마 바꿔줄까?”라는 익숙한 말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어제까지 존재했던 사람이 오늘은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그렇게도 단호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정말 사라진 걸까? 문득 깨닫게 된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을. 길을 걸을 때, 아이들을 바라볼 때, 힘든 순간마다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그 따뜻한 목소리, 무뚝뚝하지만 애정이 깃든 말투, 그리고 언제나 가족을 먼저 생각하시던 마음까지. 나는 여전히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분명한 경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 경계는 기억 속에서 살아있다. 우리는 떠난 이들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이 남긴 사랑과 따뜻한 순간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언젠가 나도 그 경계를 넘는 날이 오겠지만,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따뜻한 존재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