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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동행(同行), 그 따뜻한 온기

by lee nam

길을 걷다 보면 문득 혼자인 듯한 기분이 든다. 오랜 세월 살아오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결국 삶의 길 위에서 나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 삶의 곳곳에는 수많은 동행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이 남기고 간 온기는 여전히 내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여 준다.


어릴 적, 시골 마을의 골목길을 어머니 손을 잡고 걸었다. 손바닥에 전해지던 거친 촉감, 마디마디 굳어진 손이 내 작은 손을 감싸 안았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어머니의 등에 걸린 광주리에는 무거운 짐이 가득했지만, 내 손에는 늘 따뜻한 찐빵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신이 나서 한입 베어 물었고, 어머니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으셨다.

“천천히 먹어라, 목 막히겠다.”

그때는 몰랐다. 그 찐빵 하나가 어머니의 점심이었음을. 나는 철없이 혼자 먹기 바빴고, 어머니는 그저 내 배부름을 기뻐하셨다.


세월이 흘러, 나는 도시로 떠났고, 어머니는 고향에 남으셨다. 가끔 전화를 걸어도 “나는 괜찮다”며 짧게 안부만 전하셨다. 그리고… 결국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지 못했다. 지금도 생각한다. 조금만 더 자주 찾아갈걸, 손 한번 더 꼭 잡아드릴걸. 하지만 후회만 남은 채, 어머니는 이제 내 기억 속에서만 함께 걷고 있다.


나는 자주 어머니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에는 그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문득문득 거울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아이들을 챙기며 바쁘게 움직이는 내 손끝에서, 정원을 돌보며 흙을 만지는 손마디에서, 그리고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혼자 국을 끓이며 “좀 더 간을 볼까?” 중얼거리는 순간, 나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는 떠나셨지만, 나는 여전히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큰아이가 첫걸음을 뗐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작은 다리가 후들거리며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혹여 넘어질까 봐 손을 뻗었지만, 녀석은 내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걷고 싶어 했다.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두며 성장해 갔다.


어느새 아이들은 자라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학을 가고, 타지에서 일을 하고, 나보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하던 날,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지낼게요.” 하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나는 손을 흔들며 웃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나 언젠가 아이들이 다시 나를 찾을 것을 안다. 삶이라는 길 위에서 우리는 떨어졌다가도 다시 만난다.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며,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마음만은 함께하고 있음을 믿는다.


이제는 혼자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침이면 정원으로 나가, 조용히 흙을 만지며 시간을 보낸다. 봄이면 작은 새싹이 돋고, 여름에는 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물든다. 그리고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가끔은 벤치에 앉아 지나온 날들을 떠올린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나는 성장했고, 사랑했고, 아파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는다. 동행은 단순히 옆에서 함께 걷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그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동행이라는 것을.


나는 혼자서 걷는 것 같지만, 실은 그동안 함께했던 이들의 흔적을 따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나의 삶을 지켜봐 주었던 것처럼, 나도 이제는 아이들의 길을 멀리서 바라보며 응원한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도 같은 깨달음을 얻겠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걸어온 길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삶의 길 위에서 우리는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따뜻한 동행을 만난다. 하지만 결국, 우리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함께하고 있었다. 그 따뜻한 온기를 기억하며, 나 역시 누군가의 좋은 동행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참 행복한 동행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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