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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안개의 성을 지나오며

by lee nam

한때 나는 앞을 볼 수 없는 소경이었고,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였으며, 말할 수 없는 벙어리였다. 어린아이 넷을 데리고 낯선 미국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던 나는 짙은 안개의 성에 갇힌 것처럼 모든 방향을 잃었다. 운전할 줄 모르는 절름발이 엄마로,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몰랐던 나는 매일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언어는 내가 넘지 못할 장벽이었고, 이질 문화는 태산처럼 내 앞을 턱 가로막고 있었다.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아이들을 이끌어야 했지만, 현실 속의 나는 그저 혼란스러운 길 위에 선 작은 점에 불과했다.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무작정 앞으로 나아갔다. 어딘지도 모른 채 길을 묻고, 서로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때로는 너무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내 손의 온기조차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그 안개는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마치 새벽의 안개가 점점 사라지듯, 내 삶에도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나를 앞서서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나의 눈과 귀가 되어 주었다. 그들의 밝은 웃음은 내 마음에 작은 창문을 열었고, 그 안으로 들어온 빛은 내가 걸어온 길을 비추었다.


지금 나는 환한 세상에 서 있다. 짙은 안개의 터널을 지나온 나와 아이들은 드디어 밝은 길목에 닿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안갯속에서 방향을 잃어 충돌한 운전자처럼, 나는 종종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부딪혔다. 나의 신호는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그들의 마음도 나에게 닿지 않았다. 서로 오해와 갈등 속에서 아파하며, 때로는 혼자 눈물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깨달았다. 짙은 안갯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결국 그 안개는 걷히게 마련이라는 것을. 우리가 조금씩 더 진심을 다하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손길을 내밀 때, 안개는 차츰 사라지고 세상은 밝아진다.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안개가 걷히고, 우리는 밝은 빛 아래에서 서로를 마주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새겨진 삶의 흔적을 보고,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손을 내밀어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긴 안개의 터널을 지나왔구나. 그리고 이제 여기에서 만났구나.”


짙은 안갯속에서 길을 잃었던 날들도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삶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안개의 터널을 지나온 모든 순간에 감사한다.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안개성을 지날 때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거울을 들여다보며 웃을 수 있는 봄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희미안 안개가 걷히기 마련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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