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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나무와 나이테, 생일

by lee nam

나무는 말이 없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잎사귀를 흔들며 속삭이는 듯 보이지만, 정작 그들의 이야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나무는 자신의 삶을 속으로 기록한다. 해마다 나이테를 남기며, 자신이 지나온 계절과 겪어온 시간을 조용히 품는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나무처럼 나이테를 쌓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매년 생일을 맞으며, 또 한 해를 축하한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고, 새해의 다짐을 나누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흔적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한 해 동안의 기쁨과 슬픔, 성취와 아쉬움이 마음속 어딘가에 얇은 나이테로 새겨진다.


나의 삶에도 그런 나이테가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맞이했던 생일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초가 몇 개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가족의 웃음소리와 따뜻한 밥상, 그리고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셨던 작은 미역국 한 그릇이 내게 세상 전부였다. 그 시절의 나이테는 얇고도 맑았다. 마치 봄날의 싱그러운 초록처럼.


하지만 나이테가 늘어날수록, 그 안에는 다양한 색과 두께가 더해졌다. 고된 시간은 나이테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아픔과 눈물은 어딘가 거친 결로 남았다. 내 가미국에 와서 처음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맛보았던 30대의 생일,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던 그 순간의 흔적도 나이테 속 어딘가에 분명히 새겨져 있다.


그러나 나무가 그러하듯, 모든 시간은 결국 내 안에서 조화롭게 쌓여간다. 한 해가 지나면 나무는 그만큼 더 굵어지고 높아진다. 나 역시 내가 쌓아온 나이테 덕분에 조금 더 단단해졌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도, 청춘의 방황도, 이제는 내가 살아온 시간의 일부로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무는 자신의 나이테를 알까? 보이지 않는 속살에 새겨지는 그 모든 시간의 흔적을, 스스로 느끼고 있을까? 아마 나무는 굳이 그것을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이테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자신의 삶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일을 맞는 나도 이제는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더해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한 겹 더 쌓아가는 일이다. 그 이야기가 때로는 푸르고, 때로는 거칠며, 때로는 눈물겹더라도, 그것은 모두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흔적이다.


어느덧 케이크 위의 초가 많아졌다. 축하의 말보다 추억을 돌아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싫지 않다. 매년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나무처럼 내 안에 새겨진 나이테를 떠올려 본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나는 또 한 해를 살아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내 삶의 나이테가 마지막으로 새겨지는 날, 나는 그 안에 담긴 모든 시간들을 고이 안고 조용히 떠나리라. 그 순간, 나무의 나이테처럼 내 인생도 그 자체로 완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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