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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다듬잇돌

by lee nam

다듬잇돌은 옛날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했던 물건이다. 무심한 듯 단단하고 묵직한 모습. 그것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위에 놓인 천을 정성스럽게 두드리며 매끈하게 다듬어 주었다. 구겨지고 거친 천이 다듬잇돌의 표면을 지나칠 때마다 단정하고 고운 결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다듬잇돌은 결코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누군가의 삶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보듬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


ㅠ다듬잇돌은 희생의 상징이다. 천이 고와질수록 다듬잇돌의 표면은 점점 닳아간다. 오랜 시간 두드림을 받아낸 자리는 매끈하게 닳고, 돌의 본래 모양은 희미해진다. 하지만 다듬잇돌은 불평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그 과정을 통해서 다른 이의 삶을 다듬고 정돈하는 데 온 힘을 다한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다듬잇돌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늘 우리 가족의 삶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자신을 닳게 하셨다. 자녀들의 삶에서 구겨지고 어긋난 부분을 발견하실 때마다, 아무런 내색 없이 그것을 다듬으셨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 자신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셨을까. 내 옷의 주름이 펴질수록, 어머니의 손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주름이 깊어져 갔다.


다듬잇돌은 겉으로는 차갑고 단단하지만, 그 속에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천을 두드리는 과정은 마치 사랑의 노동 같다. 단순히 천을 곧게 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정성과 애정을 담아내는 일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다듬잇돌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우리 삶 속에 살아 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다른 이의 구겨진 마음을 펴주고 정리해 주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다듬잇돌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삶 속에서 다듬잇돌 같은 사람들은 대개 빛나지 않는다. 그들은 배경처럼 조용히 자리하지만, 그들의 손길이 닿은 곳은 언제나 단정하고 아름답다. 다듬잇돌의 역할은 우리가 쉽게 잊지만,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온전할 수 없다.


ㅍ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군가의 다듬잇돌이 되고 있는가? 내 가족에게, 내 친구들에게, 또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내가 조용히 힘이 되고 있는가? 다듬잇돌처럼 내 자리에서 묵묵히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나를 돌아보고, 내 주변을 더 섬세히 살피려 노력한다.


다듬잇돌은 말없이 우리에게 삶의 철학을 가르친다. 자신을 닳게 하며 다른 이의 구김을 펴 주는 존재, 그것이야말로 사랑과 희생의 가장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형태가 아닐까. 나는 다듬잇돌처럼 살고 싶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삶을 가지런히 다듬어 주며, 끝내 내 존재의 흔적이 닳아 없어질지라도 그것으로 기꺼이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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