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 십 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그 길가에는 끝없이 펼쳐진 목화밭이 있었고, 봄이면 연노랑 목화꽃이 피었다가 어느새 하얀 솜을 품은 열매로 변하곤 했다. 친구는 하굣길에 살며시 목화 열매를 따 입에 넣었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맛은, 어떤 설탕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선물이었단다.
세월이 흘러 친구는 도시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가끔은 어린 시절의 그 목화밭이 그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산책길에서 목화꽃 한 그루를 발견했다.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친구는 주인을 찾아가 가을이 되면 목화씨를 조금 나눠 받을 수 있을지 조심스레 물었고, 다행히도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친구는 약속한 계절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갈 무렵, 작은 목화씨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베란다의 작은 화분에 소중히 심고, 날마다 애정을 담아 보살폈다. 마침내 이듬해 봄, 연노랑 목화꽃이 피어올랐다.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꽃잎을 바라보며 친구는 오래전 자신이 걸었던 그 길을 떠올렸다.
해마다 친구의 베란다에는 어김없이 목화꽃이 피어난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면, 그는 미국에 사는 나에게도 꽃이 핀 사진을 보내준다. 화면 속 목화꽃을 바라보며, 나는 그 꽃을 닮은 친구를 떠올린다.
친구는 목화꽃의 기쁨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았다. 매년 가을이 되면 씨앗을 모아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 작은 씨앗 하나가 언젠가 당신의 베란다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할 거예요.” 씨앗을 건네는 친구의 얼굴에는 , 어린 시절 목화밭을 거닐던 소녀 때의 미소가 다시 피어나곤 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내겐 목화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꽃이 사람을 닮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꽃을 닮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