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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말의 벽, 마음의 벽

by lee nam

어느 날 경상도 출신의 친구가 나에게 “야, 문둥이처럼 굴지 마라”라고 했다. 순간 나는 크게 당황했다. ‘문둥이’라는 말이 나쁜 뜻이라는 걸 알기에, 도대체 왜 그런 표현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경상도에서는 ‘어설프게 굴지 말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었다. 친구는 전혀 악의 없이 쓴 말이었지만, 나는 한동안 그 말을 곱씹으며 마음이 불편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전라도에서도 있었다. 전라도 출신의 한 지인이 나를 보고 “가시나야, 이리 와봐라”라고 했다. 나는 또 한 번 당황했다. ‘가시나’라는 말이 남한의 표준어에서는 여성 비하적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어린 여자아이’나 ‘친근한 여동생’을 부르는 말이었다. 그 말이 그곳에서는 자연스럽고 정겨운 표현임을 알게 된 후에야, 나는 그 말에 담긴 따뜻한 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북한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다. 우리는 흔히 ‘개소리’를 심한 욕설로 여기지만, 북한에서는 ‘헛소리’ 정도의 의미로 비교적 일상적으로 쓰인다. 만약 북한 출신의 사람이 남한에서 “그거 개소리 아니요?”라고 말했다면, 듣는 사람은 크게 기분이 상할지도 모른다. 같은 말을 해도 지역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렇듯 방언은 같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익숙한 단어라도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거나, 예상치 못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방언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거칠고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고, 때로는 모욕적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의 본래 뜻과 그 속에 담긴 정서를 이해한다면, 오해는 풀리고 마음의 벽도 허물어진다.


언어는 단순한 말의 조합이 아니다. 그 안에는 그 지역의 역사와 정서,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때로는 방언이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것이 원래 가진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우리는 더욱 깊이 소통할 수 있다. 말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해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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