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던 연꽃씨가 깨어났다. 무려 700년을 기다린 끝에 다시 햇빛을 맞이한 것이다. 상상해 본다. 깊고 어두운 흙 속에서 긴 시간을 견디며 언젠가 다시 피어날 날을 기다렸을 연꽃씨의 인내를 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연구팀이 고려 시대 유물과 함께 발견된 연꽃씨를 조심스럽게 발아시켰다. 모두가 반신반의했지만, 기적처럼 싹이 트고 잎이 피어났다. 그렇게 700년 전의 시간이 현재로 이어졌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한동안 그 작은 씨앗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생명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 빛도, 물도, 따뜻한 온기도 없이 오직 단단한 껍질 속에서 침묵을 지키며 살아 있었을 그 씨앗을 생각하면 경이로움과 함께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러면서 문득, 내 마음속에도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씨앗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한때 작가를 꿈꿨다. 학창 시절, 글쓰기를 좋아해 짧은 수필과 시를 써 내려가며 혼자 흐뭇해하곤 했다. 그러나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글은 점점 나와 멀어졌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먼저였다.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먼 곳으로 밀려났고, 언젠가 다시 시작해야지 하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다 몇 해 전에 예상치 못한 일이 내 삶을 흔들어 놓았다. 건강을 잃고 오랜 투병 끝에 가까스로 회복했을 때, 나는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언젠가’라는 말로 미뤄둔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어쩌면 글을 향한 나의 꿈도 700년을 기다린 연꽃씨처럼 깊은 곳에서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날부터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오래 묵힌 꿈이라 손끝이 굳어 있는 듯했고,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매일 한 줄씩이라도 써 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작은 시도가 조금씩 나를 변화시켰다. 이제 나는 날마다 무시로 글을 쓴다. 나는 수필을 쓰고, 시를 짓는다. 작은 노트에 짧은 문장을 적기도 하고, 긴 호흡으로 에세이를 써 내려가기도 한다. 내 안에 남아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피어나는 걸 보며,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요즘엔, 정원에서 마주한 작은 풀꽃 하나를 보고도 시상이 떠오른다. “너는 어디에서 왔니?” 하고 말을 걸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어릴 적 시를 쓰던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한때 묻어두었던 꿈이 마침내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연꽃씨는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그 꽃잎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맑고 깨끗하다. 700년을 기다린 연꽃이 다시 꽃을 피웠듯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씨앗들도 언젠가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 씨앗이 깨어날 때를 놓치지 않는 것.
이제 나는 확신한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비록 늦은 것 같아도, 묻어 두었던 꿈이 있다면 다시 꺼내어 빛을 보여 주어야 한다. 700년 만에 깨어난 연꽃씨도 다시 꽃을 피웠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꿈도, 다시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마음속에 간직했던 꿈이 있다면, 다시금 조심스레 꺼내 보자.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 주자. 언젠가는 그 씨앗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다. 대기만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