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땅이 입을 연다.
겨우내 묵힌 것들을 토해내듯
조용히 균열이 생긴다.
녹슨 바람이 몸을 뒤척이면
돌담의 주름 사이로
초록빛 속삭임이 비집고 나오고
마른 가지는 햇살의 눈동자와
눈을 맞춘다.
오래된 호수 위에
얼음이 금이 가고
한 방울씩 스며든 빛이
시간을 녹이며 흘러가고
묵은 것은
낡은 자국만
남기는 줄 알았는데
그 자국마다
봄이
작은 틈새를 비집고
푸르게 돋아난다.
<<시작노트>>
이 시는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려는 시도입니다. “틈새를 뚫고”라는 제목은 제한된 공간이나 시간 속에서도 결국 새로운 생명과 가능성이 움트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시는 마른땅, 얼어붙은 호수, 녹슨 바람과 같은 이미지들을 통해 묵은 시간과 기다림이 변화의 불씨가 되어 다시 삶을 피워낸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작은 틈새를 비집고”라는 구절은 그 변화가 예기치 않게, 때로는 미세하게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어떤 큰 힘보다는 섬세한 차이를 통해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는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나 흔적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싹트고, 결국엔 푸르른 생명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그린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