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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요람을 흔드는 손

by lee nam

“요람을 흔드는 손이 세상을 움직인다.”오래된 격언이지만, 나는 이 말의 진실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누군가의 삶을 만들고, 공동체를 따뜻하게 감싸는 손. 그 손은 조용하고 겸손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내가 존경하는 한 문우 선배님께서는 어느덧 8 순에 연세다. 젊은 시절, 간호사로 이민 오셔서 일터와 가정이라는 두 축을 묵묵히 감당해 오셨다. 그분은 자녀를 키우며 생업에 종사하시고, 이민자의 삶 속에서 결코 쉽지 않았을 시간을 정성으로 버텨내신 분이다. 그 세월만으로도 고개가 절로 숙여지건만, 지금도 그분은 또 하나의 요람을 흔들고 계신다. 그것도 두 개나.


하나는 가족의 요람이다. 작년부터 막내 자녀에게서 태어난 손자를 돌보고 계신다. 쉬어야 할 은퇴 이후의 시간에, 그분은 다시 한번 새벽부터 아기의 울음소리에 일어나고, 이유식을 준비하고, 낮잠과 간식을 살피며 하루를 채워간다. 아기의 요람을 흔드는 그 손에는 사랑과 인내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 손은 과거 자녀들을 길러냈던 그 따뜻한 손이고, 이제는 다음 세대를 품는, 대물림된 사랑의 손이다.


또 하나는 문인회의 요람이다. 선배님은 단순한 회원이 아니다. 문인회라는 작은 문학 공동체가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늘 뒤에서 요람을 흔들어주시는 분이다. 정기 모임이 시작되기도 전, 선배님은 늘 가장 먼저 도착하신다. 회의실 문을 열고, 커피포트 대신 건강한 보리차 한 주전자를 끓여 놓으신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손길이다. 생일을 맞은 회원이 있는 날이면, 선배님은 회원들의 생일 파티가 끝나자마자 미리 준비한 접시에 케이크를 조용히 꺼내어, 참석한 회원 수만큼 정확히 나누어 담고, 포크까지 곁들여 깔끔하게 차려 놓으신다. 그것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애정의 표현이고, 문우들을 위한 배려의 상징이다.


요람은 흔드는 손이 있어야 비로소 요람이 된다. 가만히 놓인 요람은 단순한 가구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손으로 그 요람을 흔들고, 숨결을 맞추어 사랑을 전할 때, 그것은 비로소 생명이 자라는 공간이 된다. 선배님의 삶은 그 자체가 요람을 흔드는 일의 연속이었다. 육아든, 일터든, 문학이든. 그분은 늘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묵묵히 그 손을 움직여왔다. 그리고 그 손의 흔들림 속에서 자식은 자라고, 공동체는 따뜻해졌고, 문학은 이어져왔다.


그런 손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누구의 요람을 흔들고 있는가. 나의 손끝이 닿는 곳에 위로가 흐르고 있는가. 아니면 무심코 흔들어버린 방향 없는 손짓으로 누군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요람을 흔든다는 건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철학이다. 누군가를 믿고, 기다리며, 때로는 자신의 시간을 포기해서라도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자세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손이 있다. 일에 익숙한 손, 욕망을 향해 뻗는 손, 따뜻함을 나누는 손, 그리고 무엇보다 요람을 흔드는 손. 그 손은 세상을 움직이는 손이다. 권력의 손보다 강하고, 부유함의 손보다 따뜻하며, 말보다 깊은 울림을 가진 손이다. 내가 본 그 선배님의 손이 그러하다. 부드럽고 조용하지만, 한 공동체의 온기를 지키는 손. 아기의 꿈과 문우들의 우정을 동시에 감싸는 손이다.


오늘도 나는 그 손을 떠올린다. 문인회가 시작되기 전, 먼저 와서 주전자에 물을 올리는 모습, 생일 케이크를 조심스럽게 자르는 모습, 그리고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부드럽게 흔드는 그 손. 그것은 이 시대가 잊고 있는 ‘정성’이라는 가치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나는 그 손이 오래도록 흔들리기를,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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