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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금빛 실로 수놓은 상처

by lee nam

프랑스의 한 오래된 수도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밴 그곳은 순례자들에게 조용한 위로와 회복의 쉼터가 되어왔다. 입구 벽면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장면을 그린 오래된 성화가 걸려 있었다. 그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했고, 때로는 눈물로 침묵을 채웠다. 누군가는 용서를 구했고, 누군가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았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이 울렁이는 듯한 시간이 흘렀다. 그림은 한 폭의 회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상처가 흘러들고 흘러나가는 통로 같았다.


어느 날, 수도원에 머물던 소년이 복도에서 공을 차다 그만 그림에 부딪히고 말았다. 유리틀은 산산이 부서졌고, 화폭 한가운데에는 깊은 찢김이 생겼다. 아이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다가 곧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한 실수의 크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수도원장을 찾아가 말했다. “신부님… 그림이… 제가… 죄송해요.” 그 말에 신부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찢어진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년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얘야, 괜찮단다. 네가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사실, 지금 이 그림이 오히려 복음에 더 가까워졌단다.”


소년은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예수님도 저렇게 찢기셨단다. 너의 실수, 너의 서툼 때문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분은 우리 모두의 허물 때문에 상하셨단다. 그분의 몸이 찢기고 채찍에 맞으셨기에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단다. 지금 저 그림의 찢긴 자국은 오히려 그 진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구나.” 그 말은 소년의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림이 망가졌다는 죄책감 속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진짜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며칠 뒤, 신부는 수녀에게 부탁해 찢어진 자국 위에 금빛 실로 수를 놓게 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 금빛 자국은 낡은 성화에 새로운 빛을 더해주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고난의 깊이,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랑의 온도가 그 상처를 통해 드러났다. 이 은은한 금실은 마치 고백 위에 덧입혀진 하나님의 은혜 같았다. 상처는 더 이상 감추어야 할 흔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리는 회복이 시작되는 장소가 되었다. 찢어진 그림은 이제 더 이상 ‘훼손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복음의 증거’로 살아났다.


그날 이후, 성화를 찾는 순례자들은 그 자국 앞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 그들은 자신 안의 찢긴 자리와 마주하며 눈을 감고 기도했다. 마음 한복판에 박힌 과거의 상처, 실수로 망가진 기억, 고백하지 못한 죄책감을 예수님의 찢긴 몸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 상처 위로 은혜의 금실이 덧입혀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했다. “내가 찔림은 너의 허물 때문이고,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는 나음을 얻었단다.” 상처가 곧 회복의 출발점이라는 진리를 그들은 눈물로 체험하고 있었다. 오늘은 성금요일이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피 흘리시고 몸에 채찍을 맞고 대신 죽으셨다. 나도 이미 십 년 전 암선고를 받고 주님께서 치료해 주셔서 다시 태어나 열 살 새 생일을 맞았다. 오늘 만이라도 금식하며 나의 주님의 고통을 묵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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