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하나가 있다.
바람조차 등을 돌린 자리,
물이 없다 그래서 더욱 깊다.
비어 있어 더욱 넘실거린다.
한밤이면 별빛이 가만히 내려와
마른 물가에 발끝을 담근다.
나는 그 물을 떠보려 손을 뻗지만
손바닥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소리 없는 바람이
우물 벽을 타고 흐르고
깨지지 않은 물거품처럼
옛날 웃음소리만 떠오른다.
돌이 슬퍼서 무너진 곳에
아주 작은 풀꽃이 피었다.
잡아당길수록 더 멀어지는
그 이름 하나 그 얼굴 하나
그리움이란
텅 빈 가슴 안에
가득 차오르는 물결
멈춘 시간 속에
피어나는 새벽이다.
나는 오늘도
마른 두 손으로
우물을 길어 올린다.
비어 있는 것을
가득 안고 돌아온다.
<<시작 노트>>
지난여름 마른 우물터를 지나다 문득 생각했다. 비어 있음이야말로 가장 깊은 그리움이 아닐까.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곳일수록, 더 많은 것들이 떠오르고 넘친다. 물이 없는 우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바다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