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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oem3시

그리움의 우물

by lee nam

우물 하나가 있다.

바람조차 등을 돌린 자리,

물이 없다 그래서 더욱 깊다.

비어 있어 더욱 넘실거린다.


한밤이면 별빛이 가만히 내려와

마른 물가에 발끝을 담근다.

나는 그 물을 떠보려 손을 뻗지만

손바닥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소리 없는 바람이

우물 벽을 타고 흐르고

깨지지 않은 물거품처럼

옛날 웃음소리만 떠오른다.


돌이 슬퍼서 무너진 곳에

아주 작은 풀꽃이 피었다.

잡아당길수록 더 멀어지는

그 이름 하나 그 얼굴 하나


그리움이란

텅 빈 가슴 안에

가득 차오르는 물결

멈춘 시간 속에

피어나는 새벽이다.


나는 오늘도

마른 두 손으로

우물을 길어 올린다.

비어 있는 것을

가득 안고 돌아온다.



<<시작 노트>>


지난여름 마른 우물터를 지나다 문득 생각했다. 비어 있음이야말로 가장 깊은 그리움이 아닐까.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곳일수록, 더 많은 것들이 떠오르고 넘친다. 물이 없는 우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바다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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